핵사찰 시한 다가오는 연말이 고비

조선일보는 미국 워싱턴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함께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한반도의 앞날에 대한 견해를 조사했다. 이들에게 5개의 똑같은 질문을 던져 답을 얻은 결과는 미 ·북,한 ·미, 남북관계에 다양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답변 결과를 5개 주제로 요약한다. ( 편집자 )

응답자(무순)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차관보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태평양연구소장
래리 닉쉬 의회조사국 선임연구원
미첼 라이스 윌리엄&메리대 국제대학장
데니스 맥나마라 조지타운대 교수
에드워드 베이커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부소장
오기창 카톨릭대학 명예교수
스티븐 코스텔로 대서양위원회 선임연구원
피터 벡 한국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로버트 두자릭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
리온 시걸 사회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셀리그 해리슨 국제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조멜 위트 전브루킹스연구소 초빙연구원
폴 챔벌린 ITTA 부회장
래리 워츨 헤리티지재단 아시아연구소장
데럴 플렁크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윌리엄 테일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고문
랄프 코사 CSIS 태평양포럼 소장
데릭 미첼 CSIS 선임연구원


20명의 한반도 전문가들 중 14명은 올해 미 ·북관계가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3명은 미 ·북대화가 극적으로 재개될 가능성을 점쳤으며, 3명은 미국이 대북(對北)공격을 검토했던 1994년과 같은 위기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에드워드 베이커는 “미국의 보수파들은 미 ·북간 교착상태를 오히려 편안한 선택으로 여기고 있다 ”고 지적했으며, 로버트 아인혼은 “미국뿐 아니라 북한의 상당수 관리들도 미국과의 관계 진전이 정권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교착상태를 편하게 여기고 있다 ”고 분석했다. 오기창, 데니스 맥나마라, 로버트 두자릭 등 3명은 중동지역과 필리핀, 말레이지아의 테러조직에 집중하고 있는 미국이 북한을 공격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은 적다는 입장을 밝혔고, 스티븐 코스텔로는 “미국이 공격하기에는 북한의 실제적인 위협이 부족하다 ”고 주장했다.

고든 플레이크는 미국이 북한에 대해 으름장을 놓더라도 북한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서울을 ‘인질 ’로 잡고 있기 때문에 실제 대북 강경책을 취하기가 쉽지 않다고 분석하면서 “다만 북한의 과대반응과 오산이 관계 악화의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고 우려했다.

래리 워츨은 “북한이 생화학무기와 미사일을 수출하지 않는 한 미 ·북관계는 비교적 안정적일 것 ”이라고 했고,미첼 라이스는 “과거 수십년 동안 거듭돼 온 미 ·북관계의 주기적인 하향국면이 연출될 뿐,위기는 없을 것 ”이라고 말했다.

반면 셀리그 해리슨과 케네스 퀴노네스 등 북한통 전문가들이 위기론을 제기한 점이 주목된다. 해리슨은 “부시 행정부가 대량살상무기 등 사찰 문제에 대해 유화적인 정책을 추구하지 않으면 94년과 같은 또 다른 군사적 위기가 도래할 위험성이 있다 ”고 했고, 퀴노네스도 “북한의 과거 핵 규명을 위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사찰 시한이 다가오면서 올해말 또는 내년초에 위기가 닥칠 수 있다 ”고 전망했다. 피터 벡은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와 달리 북한의 벼랑끝 전술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수개월내에 미·북간에 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있다고 단언했다.

이와 반대로 래리 닉쉬는 “북한이 협상 이외에는 다른 현실적인 대안이 없기 때문에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 ”고 분석했다.

윌리엄 테일러도 “북한이 적군파를 추방하고 미국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제외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인다면 드라마틱한 대화 재개를 기대할 수 있다 ”고 했고, 대럴 플렁크는 “북한이 미국과 한국의 무시정책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온건한 정책을 채택할 것 ”이라고 예상했다.


◆남북통일 누가 견제하나 중국 1순위…北-日-韓-美-러시아 순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남북통일에 대해 중국, 북한, 일본, 남한, 미국, 러시아 순으로 주저한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변 4강대국과 남북한 중 통일에 가장 미온적인 나라로 중국을 꼽은 사람은 고든 플레이크, 로버트 아인혼, 래리 닉쉬, 케네스 퀴노네스, 로버트 두자릭, 랄프 코사 등 6명으로 엇비슷한 답변을 내놓았다. 통일이 남한 주도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중국은 미국의 동북아에서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 북한이 몰락할 경우 중국의 체제에 끼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 중국내 조선족의 동요 가능성 등에 대해 우려한다는 분석들이었다. 중국은 북한이라는 ‘완충지대’를 잃지 않으려 한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래리 워츨, 레온 시걸, 스티븐 코스텔로, 미첼 라이스, 폴 챔벌린 등 5명은 북한이 통일을 가장 주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통일=북한 공산 정권의 붕괴’라는 등식이 성립할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에 북한의 권력 엘리트 그룹이 통일에 대한 저항세력이라고 보았다.

통일한국이 라이벌이 될 것을 우려하는 일본이 남북통일을 견제한다는 의견도 대럴 플렁크, 오기창, 셸리그 해리슨, 윌리엄 테일러 등 4명이 제시했다.

반면, 피터 벡은 “통일을 주저하는 세력은 남북한 당사자”라며 “북한으로서는 통일이 정권의 소멸을 의미하고, 남한은 재정적 부담을 질 준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데릭 미첼도 “단기적으로는 남한이 막대한 정치·경제·사회적 부담을 우려하고 있다”고 남한을 1순위로 꼽았다.

에드워드 베이커는 “미군은 한국에서 누려온 무상 기지와 다른 특권들을 놓치기를 원치 않으며, 변화의 위험부담을 지지 않으려 한다”면서 응답자 중 유일하게 미국을 남북통일에 가장 부정적인 나라로 평가했다.

( 워싱턴=주용중특파원 midway@chosun.com )

◆ 질문 요지

1. 올해 미·북관계는 교착상태 유지, 1994년과 같은 군사적 위기 도래, 대화 전격 재개 중 어느 쪽이 가장 유력하다고 보는가.

2. 미·북간 현안(예컨대 핵무기와 제네바 협정, 미사일, 생화학 무기, 재래식 군사력 문제 등)들 가운데 긴장을 유발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사안은 무엇인가.

3.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4강대국과 남·북한 중 누가 남북통일을 가장 주저하고 있다고 보는가.

4. 북한은 향후 10년간 점진적 개혁, 현상 유지, 붕괴 등 3개의 시나리오 중 어느 길을 걸을 것으로 보는가.

5. 한·미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현안은 무엇인가. 한·미 동맹은 장기적으로 강화되는 쪽인가 약화되는 쪽인가.

◆ 응답자(무순)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차관보 ▲고든 플레이크(Flake) 맨스필드태평양연구소장 ▲래리 닉쉬(Niksch) 의회 조사국 선임연구원 ▲미첼 라이스(Rice) 윌리엄&매리대 국제대학장 ▲데니스 맥나마라(McNamara) 조지타운대 교수 ▲에드워드 베이커(Baker)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부소장 ▲오기창 가톨릭대학 명예교수 ▲스티븐 코스텔로(Costello) 대서양위원회 선임연구원 ▲피터 벡(Beck) 한국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로버트 두자릭(Dujarric)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 ▲리온 시걸(Seagal) 사회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셀리그 해리슨(Harrison) 국제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조엘 위트(Witt) 전 브루킹스연구소 초빙연구원 ▲폴 챔벌린(Chamberlain) ITTA 부회장 ▲래리 워츨(Wortzel) 헤리티지재단 아시아연구소장 ▲데럴 플렁크(Plunk)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윌리엄 테일러(Taylor)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고문 ▲랄프 코사(Cosa) CSIS 태평양포럼 소장 ▲데릭 미첼(Mitchell) CSIS 선임연구원 ▲케네스 퀴노네스(Quinonnes) 전 국무부 북한담당관


◆'10년후 북한' 전망/ 현상유지-점진개혁 양론 팽팽

북한은 향후 10년간 어떻게 변할 것인가.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현상 유지’(10명)와 ‘점진적인 개혁’(9명), 양론으로 팽팽하게 갈렸다. 북한의 딜레마는 체제 유지를 위해서는 경제개혁을 해야 하지만, 개혁을 하면 체제가 흔들리게 된다는 데 있다. 점진적인 개혁 쪽에 가세한 이들은 전자를 주목한 반면, 현상 유지를 전망한 사람들은 후자에 무게 중심을 두었다.

로버트 아인혼(Einhorn)은 “김정일의 상하이 방문에도 불구하고 중국식 개혁을 시도하려는 증거는 없다”고 했고, 고든 플레이크(Flake)는 “북한은 붕괴의 조짐도, 개혁의 조짐도 없다”고 분석했다. 래리 닉쉬(Niksch)는 북한의 완벽한 주민통제를 거론하면서 “한·미의 정책 결정자들이나 전문가들이 1995년과 96년 때처럼 북한붕괴론에 빠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윌리엄 테일러(Taylor)는 “경제붕괴는 정권의 붕괴로 이어지기 때문에 북한이 결국 점진적인 개혁을 택할 것”이라고 했고, 오기창은 “북한이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는 중국식 모델을 따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케네스 퀴노네스(Quinones)는 “북한이 무기 생산과 수출에서 민간 상품으로 산업을 이전하려는 명백한 징표들이 있다”고 주장했고, 데니스 맥나마라(McNamara)는 “중국이 북한의 개혁이 지역 안정을 증진시킨다고 판단한다면 북한은 개혁에 대한 압력을 거부하기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로버트 두자릭(Dujarric)은 응답자 중 유일하게 “체제의 약점을 감안할 때 2010년까지는 북한이 붕괴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북한과 같은 공산국가는 개혁하지 않고 붕괴할 뿐”이라고 말했다.

◆美-北관계 현안/ 대량살상무기-핵사찰이 초점

미·북간의 가장 심각한 이슈에 대한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의 견해는 미사일과 생화학무기(8명), 제네바 협정과 핵문제(7명) 두가지로 압축됐다.

랄프 코사(Cossa), 미첼 라이스(Reiss), 폴 챔벌린(Chamberlin), 피터 벡(Beck), 로버트 두자릭, 스티브 코스텔로(Costello) 등은 일제히 북한의 미사일 확산과 생화학무기 수출이 부시 행정부의 최고 관심사라고 진단했으며, 이 가운데 피터 벡은 “북한이 탈레반과 기타 불량국가들에게 대량살상무기를 판매했다는 소문이 있다”고 주장했다. 오기창은 “미국은 현재 미사일 방어에 몰두해 있으며, 북한이 미사일 개발과 수출을 최소화지 않으면 미국은 심각한 잠재적 위협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제네바 협정을 우선적으로 지목한 사람들은 경수로 핵심부품 인도 전에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과거 핵사찰을 받아야 한다는 합의가 지켜지지 않을 경우를 가장 우려했다.

래리 닉쉬는 “부시 행정부는 2003년 중 경수로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면서 “올해 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조명받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윌리엄 테일러와 케네스 퀴노네스는 과거 핵활동 규명을 위한 사찰 문제가 타결되지 않을 경우, 우발 또는 오판에 의한 전쟁 위험성까지 거론했다.

래리 워츨(Wortzel), 에드워드 베이커(Baker), 대럴 플렁크(Plunk) 등 3명은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문제를 가장 심각한 이슈로 꼽았다. 플렁크는 “재래식 군사력 감축 여부로 북한의 진정한 의도를 시험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베이커는 “북한은 미국이 10여년만에 처음으로 이 문제를 꺼낸 것은 관계 개선을 지연하려는 의도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통일 누가 견제하나 중국 1순위...北·日·韓·美·러순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한·미 양국 정부의 대북 접근을 둘러싼 이견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대북정책의 공조 회복을 한결같이 주문했다.

케네스 퀴노네스는 “대북 협상과정에서 누가 주도권을 가질 것인지에 대해 부시 행정부와 김대중 정부간에 이견이 있다”고 전제한 뒤, 공화당 보수파의 김 대통령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을 거론하면서 “양 지도자간에 관계개선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래리 닉쉬는 “재래식 군사력 문제, 평화협정 등에 대해 한미간 역할분담을 엄격히 적용하려는 태도가 한미간의 분열과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고 했고, 데릭 미첼(Mitchell)은 “한국에서 반미정서의 증가, 특히 주한미군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든 플레이크는 “미국은 남북관계의 종속변수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통일에 반대하거나 남북관계 악화의 원인’이라는 한국내의 인식이 문제”라고 지적한 반면, 윌리엄 테일러는 부시 행정부의 일방적인 대북접근에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 동맹 관계 자체를 우려하는 사람은 없었다.

장기적으로 데럴 플렁크는 미군 주둔 문제를 포함한 통일후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조엘 위트(Wit)도 남북관계의 점진적 개선에 따른 한미동맹의 미래 청사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리온 시걸(Sigal)은 “세계경제 환경이 실질적으로 호전되지 않으면 양국간의 무역과 금융관계도 보다 어려워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오기창과 데니스 맥나마라는 양국간 상호 이해와 존중, 양국 민간차원의 관계 증진이라는 거시적 과제를 던졌다.

/워싱턴=주용중 특파원 midwa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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