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남북 정상들의 평양 상봉과 남북공동선언 후 국민들은 희망과 기대로 부풀어 있다. 그러면서도 이런 희망이 과연 실현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아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공동선언 약속이 지켜지려면 남북이 다같이 변해야 한다. 평양 상봉 후 남한 내 분위기는 너무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북한도 얼마 전부터 대남 비방방송을 자제하는 등 다소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북한은 여전히 폐쇄사회이기 때문에 그 속마음을 알 수 없다. 북한의 변화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관영매체들이 쏟아내는 언동들을 살펴 볼 수밖에 없다. 정상회담 개최가 발표된 후 5월 1일부터 7월 11일 현재까지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등을 모니터해 본 결과 북한의 대남 전략목표는 변화한 것이 없었다. 이 점은 통일부 관계자도 시인하고 있다.

우선 대남 비방 면에서 그렇다. 6월 23일자 중앙통신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의 정상회담 설명을 듣는 자리에서 북한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그를 “역사에 둘도 없는 인간 쓰레기이고 반통일 역적인 김영삼×”라고 매도했다. 너무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었기 때문에 다 옮길 수 없을 정도이다.

그 다음날인 24일자 중앙통신은 또 조성태 국방장관을 ‘군사깡패’ ‘반 통일분자’로 맹공했다. 조 장관이 6월 22일 임시국회 국방위에서 “북한을 주적(주적)으로 명시한 군의 기본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중앙통신은 조 장관의 말을 반민족적이며 반통일적 범죄행위라면서 이런 반통일 분열주의자들부터 제거해야 한다고 해댔다.

세번째로 중앙통신과 평양방송은 조선일보에 대해 비방 포문을 열었다. 7월 8일자 중앙통신은 장문의 글을 내고 조선일보를 “반공모략지, 반공매문지 사대매국, 대결과 분열만을 고취하면서 민족의 단합과 통일에 막심한 해독을 끼쳐왔다”고 매도했다. 이유는 조선일보가 최근 6·25를 남침전쟁이라 ‘모략’하고 기자들이 언론자유 침해에 대해 대북 결의문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이 통신은 조선일보의 이런 태도를 반민족적이고 반통일적이라면서 “암초는 폭파해 없애버리는 것이 순리”라고 협박했다.

북한의 대남 전략면에서도 달라진 것이 조금도 없다. 지난 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제324전방군부대 시찰에서 군인들에게 혁명과 사상 강자가 되라면서 쌍안경과 자동보총을 선물했다. 그리고 그는 군인들의 화력시범훈련을 참관하면서 격려했다.

8일자 중앙통신은 ‘한민전’ 평양대표부 박광기 대표가 이날 김일성 주석 유해가 안치된 금수산 기념궁전에서 남녘 ‘전위투사들’을 대표해 삼가 인사를 했다고 보도했다. 그런가 하면 한민전 중앙위원회가 서울에서 ‘위대한 김일성 동지 서거 6돌에 즈음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 충성맹세 편지를 보냈다면서 편지 전문을 길게 보도했다. 충성편지는 ‘김정일 동지를 수위에 놓아’ 통일을 이룩해야 하며 이것이 마치 ‘남녘 동포들’의 뜻인 것처럼 위장했다.

한민전은 소위 남조선 내 지하당 ‘한국민족민주전선’의 약칭이며 69년 조직된 대남공산화 혁명을 위한 ‘통일혁명당’ 후신이라고 북한 측은 주장하고 있다. 중앙통신의 한민전 관계보도는 6·15공동선언 약속과는 달리 여전히 대남혁명 전략을 지속하고 있음을 분명히 말해준다.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등 관영매체들은 공동선언 후에도 김일성 주석이 내놓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즉,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며 합리적이고 공정한 것이라고 매일같이 끈질기게 고집하고 있다. 지금까지 공동선언에서 언급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은 북한 매체에서 한 마디도 발견되지 않았다.

북한은 공동선언후 남북관계에서 이데올로기 대신 자주와 민족, 통일, 탈냉전, 화해, 용북(용북), 친김정일, 연방제 등 전략용어들을 내세워 이를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세력들에 대해서는 ‘반민족’ ‘반통일’로 몰아서 각개 격파, 철저히 격리시킨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의 대응여부와 방향이 주목된다.

/ 여 영 무 남북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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