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문제가 1970년대 초 남북대화의 화두로 등장한 이래 아직까지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에 실향민들은 고령화하였고, 분단의 고통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산가족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는 만큼 더 이상 이 문제의 해결을 미룰 수 없다.

지난 1월5일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보다 많은 이산가족들이 상봉할 수 있도록 하라”고 한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는 이러한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정부는 조만간 이산가족의 제3국 상봉과 방북 활성화 대책을 마련해 시행할 것이라고 한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산가족 문제가 인도적 문제라는 명분하에 당위론의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된다. 북한의 입장과 남북관계 현실을 고려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되, 실사구시적 관점에서 쉬운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와 관련, 최근 북한이 이산가족 문제를 ‘외화벌이’에 이용하고 있고, 비교적 체제유지에 부담이 적은 민간차원의 제3국 상봉에 선별 호응해오고 있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는 제3국 상봉 활성화 대책이 실효성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산가족에 대해 북한주민 접촉 승인기간을 연장하거나 제3국을 통한 상봉과 생사 확인에 드는 경비 지원액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보다 종합적-입체적인 관점에서 이산가족들의 형편을 고려한 내실있는 상봉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먼저 유념할 것은 제3국을 통한 민간차원의 해결은 지속성과 안정성을 갖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 정부는 남북한 당국간 대화나 반관반민(반관반민) 단체간의 협의를 통한 해결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 이는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제도화함으로써 당사자들이 개별적으로 지불하는 비용과 소요시간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실천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협의가 제도화되기 전까지는 기존 알선단체 외에 대북 지원단체나 중국-북한에 진출한 우리 기업을 활용, 한 사람이라도 더 생사확인과 상봉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의 제3국 상봉에는 불가불 북한의 기관이나 국내 및 현지의 상봉 주선단체가 개입하게 된다. 여기서 요구하는 중개료가 만만치 않다. 제3국 상봉에 너무 많은 경비를 지원할 경우, 이러한 기관-단체들이 우리의 선의를 악용할 소지가 있다. 따라서 정부의 경비지원은 합리성을 갖는 적정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다만 사후 경비지원만을 인정하고 지원 횟수도 1회로 제한하고 있는 현 제도는 개선할 필요가 있다. 영세한 이산가족들이 제3국 상봉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산가족의 제3국 상봉시 당사자들의 신변안전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북한측이 재북가족의 신변안전을 위협하거나 이를 볼모로 부당하게 우리측에 금품제공을 요구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통일전선전술에의 이용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제3국까지 가야 하는 것은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다. 금강산관광이 지속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와 긴밀한 협조하에 금강산지역에 이산가족들이 만날 수 있는 면회소를 설치, 한반도 내 상봉이 성사되도록 하는 방안도 강구해봄직 하다. 필요하다면 북한측이 1998년 3월에 임시설치한 사회안전부 산하 이산가족 주소안내소를 활용해야 한다.

요컨대 정부는 민간단체와의 적절한 역할분담을 통해 가능한 모든 틈새를 파고듦으로써 이산가족들이 겪고 있는 인간적인 고통을 줄이도록 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 정부의 충분한 예산 뒷받침과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제성호 통일연구원 북한사회인권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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