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위반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40대 남자가 정부기관의 전산 프로그램을 개발.관리하는 회사에 취직해 합동참모본부와 정부통합전산센터 등을 수시로 출입하며 군사 기밀과 정부기관 전산 자료를 빼낸 혐의로 공안 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다.

2일 수원지검 등에 따르면 김모(43.성남시 거주)씨는 지난 2005년 3월 정부.기업의 전산 정보를 관리하는 서울 강남의 N사에 취직했고 그해 12월 합참의 KJCCS 통합관제시스템 구축 사업에 참여한 뒤 지난 3월 정직처분 이전까지 각종 국가기밀을 빼낸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공안 당국이 압수한 김씨의 컴퓨터와 외장하드에는 5기가 분량의 정보가 들어있으며 '합참', '금감원', '대검' 등 10여개 정부기관과 '신협', '포스코' 등의 10여개의 기업 전산 자료가 별도로 저장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군사기밀과 관련된 자료로는 합참의 '통합지휘통제체계(KJCCS) 제안요청서'와 우리 군의 '노드 IP주소' 등 다수가 포함됐다.

KJCCS는 작전사령부급 이상 부대에 전장(戰場) 상황을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며, 노드 IP주소는 우리 군의 주요 컴퓨터에 들어가는 주소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들 자료가 유출됐을 경우 북한 등의 사이버 공격에 치명적 약점을 드러내게 된다.

김씨는 군사보호시설인 합참 전산센터에 여러차례 출입했고 2007년 1월과 2008년 2월 두 차례 금강산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씨는 또 지난 2008년 4월 북한 대남공작부서에서 운영하는 인터넷사이트인 '려명' 관계자와 이메일로 접촉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기밀을 북한에 넘겼다는 증거를 확보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지방경찰청은 김씨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조사를 벌여 지난 2월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수원법원은 "증거인멸 및 도주우려가 없고 구속시 방어권을 지나치게 제한할 우려가 있다"며 기각했다.

검찰은 현재 경찰로부터 김씨 사건을 송치받아 보강수사를 벌이고 있으나 김씨가 묵비권을 행사,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원지검 박경호 차장검사는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김씨가 정부 및 사기업의 기업정보를 관리하는 업체의 전산 프로그래머로 취직한 뒤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자료를 외부로 유출했고 북한과 접촉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그러나 법원이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해 수사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수원지법 이형복 공보판사는 "경찰이 지난 2월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을 당시 오늘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북한에 군사관련 기밀을 제공했다는 내용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며 "만약 검찰의 주장처럼 북한과 접촉하고 기밀을 넘겼다면 담당판사가 영장을 기각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공보판사는 특히 "검찰이 김씨가 북한과 접촉했다는 주장을 살표보니 북한에서 운영하는 '려원'이라는 웹사이트에 접속해 '조선사회 역사적 뿌리'라는 책의 구입절차를 문의한 것이 전부"라고 꼬집었다.

한편, 김씨는 2002년 2월 이적표현물 등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N사에 입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2002년 5월 민노당에 입당했고 이듬해 8월 민노당 게시판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간첩질' 할랍니다"라고 적기도 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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