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8일 2박3일의 북한 방문 일정을 마치고 서울에 왔다. 그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북한을 찾았지만 김정일을 만나지 못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카터는 이날 서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서방세계가)북한 인권에 대해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카터 일행은 방북 직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정일·정은 부자를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카터는 "우리가 김 위원장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한국으로 오기 위해) 공항으로 가던 중 중요한 일이 있으니 다시 초대소로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초대소로 돌아가니 김 위원장의 개인 메시지를 일러주며 이를 한국 지도자들에게도 전달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북한의 외무성 부상이 초대소로 찾아와 봉투에서 종이를 꺼내더니, 김 위원장의 메시지라며 읽어줬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뿐 아니라 미국 등 6자회담의 다른 당사국과 언제든지 모든 주제에 대해 아무 조건 없이 만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상회담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우리는 남북 정상회담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이 하자는 대로만 하는 회담을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카터는 북한 관료들에게 직접 인권 문제를 언급했는지를 묻는 말에 "북한 정부의 정책에 인권과 관련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밖에서 바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했다.

"인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먹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인데 한국과 미국은 의도적으로 대북 식량지원을 억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는 명백히 인권침해라는 생각이 든다"고도 했다. 강제노동수용소 운영, 공개 처형, 국가기관의 고문 등 심각한 인권침해가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김정일 정권의 책임에 대해선 눈을 감고 한국과 미국을 거꾸로 인권침해국이라고 몰아세운 것이다.

카터는 이날 "천안함 사건에 대해 북한이 책임을 인정하거나 사과하지는 않았다"며 "그러나 군과 정치 지도자들이 천안함, 연평도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 민간인의 목숨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날 카터를 만난 정부 당국자는 "북한 측에서 희생자들에 대해 어떤 언급을 했는지 분명하지 않다"고 말했다. 카터가 북한의 메신저(전령)로 나섰다는 지적이 나왔다.

카터는 이날 "작년 8월에 방북했을 때와 비교해 굉장히 다른 점 두 가지를 발견했다"고도 했다. 예전에는 북한 정부가 외부에서 지원받은 식량의 배급 상황을 모니터링하지 못하게 막았지만 이번엔 그런 장애가 모두 사라졌고, 핵 문제에 대해 반드시 미국과만 논의하겠다던 북한이 이제 남한 정부와도 핵 문제를 논의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카터 일행이 "식량 모니터링의 장애가 사라졌다"는 근거로 제시한 것은 북한 당국이 '지원된 식량의 배급 상황에 대한 모니터링과 어린이들의 영양 상태 확인을 허락하겠다'며 세계식량계획(WFP)과 체결한 양해각서(MOU) 정도였다. 또 우리가 제안한 '남북한 6자회담 수석대표간의 비핵화 회담'에 대해서도 아직 응하지 않고 있다./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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