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 분위기는 썰렁하다. 미·북, 남·북 관계가 얼어붙으면서 한·미 관계도 무덤덤해진 탓일까. 간헐적으로 열리는 한반도 세미나들도 김 빠진 맥주 같다. 그나마 논의를 촉발시키고 있는 계기가 미·북 관계의 새로운 위기 가능성이라는 점이 더 을씨년스럽다.

11일 낮(미국시각) 한 점심 자리에서는 한반도 문제를 싸고 단골로 논쟁을 벌이던 두 ‘앙숙’이 모처럼 만났다. 클린턴 행정부 때 국무부에서 제네바 협정 실무를 맡았던 조엘 위트(Wit)와 지난 8월 국무부에 들어간 로버트 매닝(Manning) 전 미 외교협의회 선임연구원이었다.

두 사람의 설전에는 민주당과 공화당 행정부의 대북 접근 방식의 차이가 그대로 묻어났지만, 울림이 없는 메아리처럼 들렸다. “북한은 도저히 못믿겠다”는 매닝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다독거려야 한다”는 위트나 북한의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지쳐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대목은 “김정일 위원장은 워낙 드라마틱한 사람이니 누가 앞일을 알겠느냐”는 매닝의 말에 “그 누구도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점쟁이가 될 수 없다”고 위트가 맞장구를 쳤을 때였다.

지난주 우드로 윌슨 센터가 주최한 ‘한반도와 클린턴 행정부:2000년의 회고’ 세미나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왔었다. 스티븐 보즈워스(Bosworth) 전 주한대사가 “김 위원장은 정말 드라마틱한 사람”이라고 말하자, 웬디 셔먼(Sherman) 전 대북정책조정관은 “김 위원장은 영화광 아니냐”고 맞장구를 쳐 실소를 자아냈었다. 클린턴 행정부 때 ‘본부’와 ‘현장’에서 한반도를 담당했던 주역들의 얘기 치고는 참으로 답답하게 들린다.

내년에도 한반도 문제가 희화화되지는 않을까 걱정케 하는 대목들이다./주용중·워싱턴특파원 midwa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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