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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통일은 사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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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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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성길
/연세대 통일연구원장·정신의학 교수

남북한 통일과정에서 국가 통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의 통일이다. 사람의 통일은 국가통일에 앞서 준비돼야 하고, 또 그 이후에도 상당 기간 지속돼야 할 과제다. 50년 넘게 분단된 남북한의 보통사람들이 잘 어울려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분명 우리와 같은 민족이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사고방식 가치관 행동양식 등은 이미 판이하게 달라져 있음을 우리는 곳곳에서 확인하고 있다.

최근 통일연구를 위해 루마니아를 방문하고 많은 걸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이 나라는 과거 동구권 중에서도 통제와 억압이 가장 심했고, 그 때문에 개혁의 과정도 매우 과격했다. 북한 김일성 통치 방식을 일부 도입하기도 했던 차우셰스쿠는 동구권 지도자 중 유일하게 혁명과정에서 처형당했을 정도다.

과거 공산독재 체제의 폐해가 컸던 탓인지 이 나라는 개혁후 10년이 지난 지금도 진정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한 채 고통스런 학습의 과정을 밟고 있었다. 이 나라 지식인들은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아직도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꼽았다.

공산주의 시절의 어둡고 긴 그림자를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채 많은 사람들은 그날 그날을 수동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와 시장경제가 주는 충격에 혼란스러워하면서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가게 점원은 옛날 버릇대로 거스름돈을 손님에게 휙 던지고 손님은 말없이 흩어진 돈을 주섬주섬 주워가기 일쑤다. 그래서 최근 문을 연 미국식 맥도날드햄버거 가게의 점원이 보여주는 친절은 그들에겐 하나의 충격이었다.

그들에게는 자발성, 자기 주장, 개인주의는 여전히 익숙지 못하다. 경쟁이 너무 힘들어서인지 주어진 자유를 부담스러워할 뿐 아니라, 오히려 통제 속에서나마 완전고용 사회였던 시절에 향수를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해고를 두려워하여 공기업이 민영화되는 것을 한사코 반대하고, 그래서 파업도 잦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또는 더욱 가난한 상태에 있지만 일부 영악한 사람들은 기득권을 이용하고 밀수 등의 불법행위까지 저지르면서 벼락부자가 되기도 했다. 젊은이들도 온통 돈버는 일에만 관심이 쏠린다.

갑자기 얻어진 정치적 자유도 아직은 미성숙 상태라고 이 나라 학자들은 지적했다.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방종으로 흐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계층간 집단간, 그리고 지역간 갈등과 긴장이 높고 정치현장에는 「마녀사냥」과도 같은 상호 비방이 심하다고 한다. 사회주의적 질서가 붕괴된 후 새로운 규범이 정착되지 않은 채 무질서와 부패와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형국이고, 지식인들은 천박한 자본주의에 대해 깊은 우려를 하고 있었다.

루마니아가 겪고 있는 고통스런 변혁의 과정은 아무리 정치체제가 변하더라도 보통사람들의 의식과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사회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실증하고 있다. 거기에는 또 긴 연습과 훈련의 과정이 필요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나라의 형편을 보면서 우리의 통일 상황을 상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과연 남북이 통일사회에서 서로 어울려 잘 살 수 있을까. 지금부터 통일 이후를 생각하는 연구와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면 우리도 혼란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국내에 들어와 있는 많은 탈북자들이 있고, 이들을 통해 북한주민들이 체제변혁 과정에서 겪게 될 어려움을 미리 알아낼 수 있으며, 조화로운 ‘사람의 통일’ 방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우리는 남북 화해 과정을 보다 순조롭게 이끌 수 있고, 나아가 혼란을 최소화한 성숙한 통일국가의 탄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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