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7일 백두산 화산 문제를 다루기 위한 남북대화를 갖자고 제의해 온 것은 일본 대(大)지진으로 지진·화산 등 대형 자연재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분위기를 이용해 우리 정부가 남북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내건 '천안함·연평도 문제'를 우회(迂廻)하려는 속셈으로 보인다.

최근 수년간 우리와 중국 학계에서 백두산 재(再)분화 가능성이 꾸준히 나왔어도 북한은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한 적이 없다. 정부 핵심당국자는 "당장 백두산에 무슨 이상이 있다는 보고는 없다"고 말했다.

북한은 최근 다양한 방식으로 남북대화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15일에는 서해상으로 남하한 주민 31명 중 귀순자 4명을 뺀 27명을 우선 받겠다고 우리측에 통보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북한은 "귀순자가 나온 것은 남한 공작 때문"이라며 31명 전원 송환을 요구했었다. 같은 날 북한 외무성은 "조선(북)은 6자회담에서 우라늄농축 문제가 논의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논평원의 글은 노동당이 중요 현안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힐 때 자주 사용하는 형식이다. 그러면서 노동신문은 천안함 사건을 "모략적 정체가 드러난 사건", 연평도 포격을 "응당한 대응조치", 한반도 비핵화는 "미국과 논의할 문제"라는 종전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런 전후 상황을 감안하면 북한이 백두산 화산 재분화를 실제 염려하고 있다기보다는 일본 대지진을 틈타 백두산 화산을 남북대화의 문을 여는 새로운 통로로 삼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역시 이런 북이 갑자기 백두산 화산 회담을 제안한 배경을 순수하게만 볼 수 없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도 북의 대화 제의를 받아들인 이유에 대해 안보부서 당국자는 "백두산 화산 문제는 천안함·연평도와 별개로 일본 대지진 와중에 한 번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며 "그러나 북한이 원하는 대북 지원 등이 재개되려면 천안함·연평도 도발을 그냥 넘길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에서 백두산은 김정일이 태어나고 김일성이 항일 투쟁을 한 혁명의 성지인데 북한이 남북대화를 위해 '성지(聖地) 백두산' 폭발 가능성까지 들고 나올 줄은 몰랐다"며 "뭔가 급한 것 같다"고 했다. 백두산 화산이 다시 폭발해 김정일 생가(북한 주장) 뒤편에 있는 '정일봉'(큰 바위)이 날아가는 것은 북한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북한은 1998년 이후 매년 수천 명의 대학생들에게 양강도 혜산시에서 김정일 생가가 있는 백두산 삼지연군까지 일주일 동안 걸어서 답사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북 인터넷매체인 데일리 NK는 지난 1월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최근 백두산 화산 폭발과 관련한 대응책을 마련하라는 당 중앙위 비서국 명의의 지시문이 내려왔다"며 "화산 폭발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양강도와 함경북도 지역당 위원회 간부합동회의가 열려 대책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북한 정권이 백두산 화산 문제를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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