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위 관계자는 4일 "남북정상회담이 당장 실현되지는 않겠지만 이를 위해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언제까지 남북이 가파르게 대치하는 상태로 계속 가야 하느냐에 대한 문제제기가 정부 내에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관계자의 발언은 정부 및 여권 일각에서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조성된 대치상태를 풀기 위해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일본의 아사히신문도 이날 한국과 북한이 지난 1월 중국에서 정상회담을 목표로 비밀 접촉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한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지난 1월 한국과 북한이 중국에서 정상회담 실현을 목표로 비밀 접촉을 했으며 북한의 무력도발 처리 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고 전했다.

또 "남북 비밀 접촉에는 북한 쪽에서 남북 관계를 주로 담당하는 노동당 통일전선부 관계자가 참석했으며 정상회담 실현을 목표로 장애가 되는 천안함 침몰사건과 연평도 포격, 핵문제 등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협의했다"고 전했다.

◆정상회담 권유받는 이 대통령

정부는 표면적으로는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현재 남북정상회담을 검토하거나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현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추진 중이라는 관측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외교안보자문그룹의 일부 인사로부터도 정상회담을 적극 추진하라는 권유를 받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조언(助言)해 온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지난 1월 본지 기고문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건의했다. 윤 교수는 "결국 천안함·연평도 사건의 매듭도 김정일만이 풀 수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남북 정상 간 담판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여건이 갖춰지면 남북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방송좌담회와 3·1절 기념사 등을 통해 "언제든지 남북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고 해왔다.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200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북한 노동당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비밀 접촉했던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은 현재 대통령 실장으로 옮긴 상태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2000년 6월, 2007년 10월의 1·2차 정상회담처럼 엄청난 대가를 주거나 의전상의 수모를 감수하면서 할 생각은 없다는 생각이 분명하다는 게 여권 인사들의 말이다. 정부의 핵심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과거처럼 회담 일정도 사전에 모른 채 김정일에게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형태의 회담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확고하다"고 했다.

◆이 대통령, '고이즈미 모델'선호

이 대통령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일본총리와 김정일 간의 정상회담을 모델로 삼고 있다고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이 전하고 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2002년 9월, 2004년 5월 방북 당시 의전행사를 최소화하고 도쿄에서 도시락을 준비해 갔다. 두 번 모두 아침 일찍 도쿄를 출발해 당일 돌아오는 무박(無泊) 일정이었다. 1차 회담에서는 북일(北日) 평양선언을 이끌어냈고, 2차 회담에서는 납치 피해자 가족 5명의 귀국을 실현시켰다.

한 외교 소식통은 "고이즈미 전 총리의 방북처럼 의전절차를 대폭 생략하고, 판문점이나 개성 등에서 의제 중심으로 회담을 하는 방안을 북한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중요한 변수"라고 했다./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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