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 ‘알만한 사람들이 잘못 쓰고 있는 우리말 1234가지’에 대한 이윤기 씨의 반론은, ‘반론’이라기 보다는 ‘이 말은 이런 뜻으로, 저 말은 저런 뜻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소박한 ‘호소‘에 가깝다. 내가 ‘알듯 모를 듯하다’고 지적한 ‘저리해왔다’ ‘잣아서’ 등 여덟 군데에 대한 해명으로 그는 일언반구의 ‘표준어다’ ‘비표준어다’의 언급없이 한결같이 이 말은 ‘전주 출신 아무개 형한테서 배운’ 말이고, 또 이 말은 ‘어머니로부터 배운 내 고향 경상도’ 말이어서 ‘한번 써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작가는 우리말 우리글을 갈고 닦는 데에 옴짝달짝할 수 없는 교사여야 한다는 평소의 내 생각에 그의 ‘호소’는 공허하기만 하다. 언어규범은 하나의 약속체계이다. 이 약속은, 성한 것은 일으켜 세우고 비리비리한 것은 버릴 것을 강제한다. 그래야 말글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윤기 씨와 같은 작가의 ‘시도’가 언어규범에 어떻게, 얼마만큼의 순기능으로서의 침윤, 조응(조응) 기능을 갖는가의 논의는 별도로 더 폭넓게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모를 일이다. 비표준어도 이 씨와 같은 지명도 높은 작가들이 즐겨 써서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말이 되면 언젠가는 표준어가 될지는. 그러나 같은 뜻을 지닌 다른 말(표준어)로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것을 그 말 말고는 도저히 ‘문학적, 정서적 풍경을 복원하지 못하겠다’며 버젓이 비표준어를 지문에다 고집하는 것은 억지요 횡포라는 생각이다.

내가 지적한 그의 ‘조어’들은 비록 특정 지역의 지역어(그는 ‘지방어’라고 했으나 ‘지역어’가 옳다)라고는 하지만 어느 것 하나(‘속닥하다’ 제외) 사투리나 속어, 은어로도 우리말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말들이다.

그의 ‘해명’에도 오류가 있다. ‘뒷짐질’은 ‘뒤짐질’의 오식(오식)이라고 했는데, ‘뒤짐질’도 표준어는 아니다. 다만 북한에서는 ‘어떤 일에 대하여 그 속내용을 몰라 뒤에서 미루어 하는 짐작’의 뜻으로 ‘뒤짐작’을 쓰고 있을 뿐이다. 그는 또 “북한에서는 ‘일제사격’을 ‘불질’이라 한다”고도 했는데 실은 ‘불질’은 ‘총이나 포 따위를 쏘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우리의 표준말이고 북한에서는 ‘전쟁발발’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알고 있다. 또 ‘다려’는 ‘다리다’가 원형이라고 했는데 아무렴 ‘인두로 대님을 다리다’로 쓴 것을 잘못이라고 지적했을까. 그의 단편 ‘손님’에는 ‘초롱에 불을 다려…’로 되어 있다. 이는 ‘댕겨’의 잘못임이 분명하다.

어쨌거나 ‘반성도 하지 않고 계속 쓰는 것’은 그의 자유다. 그러나 지역방언을 비롯, 모든 비표준어들은 그의 작품속 ‘대화’에서나 맛깔스럽게 구사되고 지문에서는 같은 뜻을 지닌 표준어만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속닥하게 한잔 하자’는 그의 제의를 나는 이렇게 고쳐서 제의한다.

“그럽시다. 어디 ‘호젓한 분위기’의 술집에서 ‘단출하게’(‘단촐’이 아님) 한잔 합시다. ”

/시인·’알만한 사람들이 잘못 쓰고 있는 우리말 1234가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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