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후계자 김정은이 의전(儀典)에서 김 위원장 수준의 예우를 받기 시작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28일 “김정은의 의전 서열이 아버지인 김정일 수준으로 올라간 것으로 보이는 정황들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고 했다.

이 당국자는 “가장 뚜렷한 증거가 김정일만 쓸 수 있는 최고급 털모자를 김정은도 쓰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북한 관영매체가 23·24일에 보도한 김 위원장의 평양 만수대창작사 현지지도(시찰) 장면을 보면 김정은은 김 위원장과 똑같은 털모자를 쓰고 등장한다. 실내·외 구분 없이 시종 모자를 쓰는 것은 김 부자(父子)뿐이라서 모자를 안 쓴 다른 인물들과 확연히 구별된다.

고위 탈북자 최모씨는 “‘김정일 털모자’는 외국 장인이 최상급 수달피를 이용해 특수 제작한 것으로 그 외에는 아무도 쓰지 못하는 것이 불문율”이라며 “김정은이 이 모자를 쓴다면 그가 이제 아버지에 필적할 위상에 도달했고 김정일도 이를 받아들인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작년 10월 말부터 이 모자를 쓰기 시작한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이 털모자를 착용한 것은 작년 12월 16일 인민군 제2670부대 시찰 때부터다. 정부 소식통은 “김정은이 작년 9월 28일 공식 등장한 뒤 약 석달간의 내부 정지작업을 거쳐 12월 중순부터 권력 2인자 자리를 다진 것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일 측근 중에 김기남 비서, 현철해·리명수 국방위 국장 등이 가끔 비슷한 털모자를 쓰는데, 자세히 보면 진품의 질에 한참 못 미치는 공산품”이라고 했다.

정부 당국자는 “최근 북한 매체들이 김정일 현지지도 소식을 전하면서 정작 김정일은 없는 화면을 내보내는 현상을 주목한다”고 했다. 예전 같으면 김정일이 빠진 사진이나 화면은 상상하기도 어려웠지만 최근엔 김정일 없이 김정은을 중심으로 인물들이 배치된 화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당국자는 또 “김정은이 공식 등장하기 전에 아버지를 따라 시찰했던 공장마다 ‘김정은 동지가 언제 시찰한 공장’이라고 쓰인 현판이 나붙고 있다”며 “김정은의 입지가 단단해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이용수 기자 hejsue@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