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핵심 당국자가 천안함·연평도 문제와 6자회담을 분리해서 대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시사한 지 하루 만에 정부의 고위급 당국자들이 실명(實名)으로 ‘변함없는 정부의 입장’을 강조하고 나섰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27일 KTV(한국정책방송) 정책 대담에 출연, “천안함·연평도 사태에 대한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와 비핵화 조치가 있어야 실질적이고 본격적인 6자회담이 재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이날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해 (북한이) 사과한다고 남북관계가 모두 잘 되는 것은 아니다”며 “비핵화도 하고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해 마음을 고쳐먹어야 남북관계가 잘 풀려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현 장관과 천 수석의 발언은 26일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 국무부 부장관의 방한 직후 정부 고위 당국자가 “천안함 시인이나 연평도 사과가 북핵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은 아니다”고 말한 것과는 뉘앙스가 다르다.

이에 따라 남북 대화 및 비핵화 전략을 놓고 정부 부처 간에 혼선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통일부와 외교부가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통일부는 천안함·연평도 도발에 대한 북한의 시인·사과와 비핵화 문제를 한 묶음으로 엮어 북한을 압박하려고 한다. 26일 국방부가 북한에 천안함·연평도 도발을 다룰 군사 예비회담을 제안할 때 통일부가 대변인 논평을 통해 남북 비핵화 회담을 촉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반면 외교부는 천안함·연평도 도발과 비핵화 문제를 분리해서 다루자는 입장이다. 김성환 장관은 25일 정례 브리핑에서 “비핵화 회담은 6자회담의 틀 안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천안함·연평도는 남북 대화에서, 비핵화 문제는 6자회담에서 따로 해결하자는 취지로도 해석된다.

통일부와 외교부는 서로를 향해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천안함·연평도 도발에 대한 북한의 시인·사과를 받으려면 대북 지원과 비핵화 촉구라는 두 개의 무기를 가지고 압박해야 한다”며 “비핵화가 떨어져 나가면 남북 대화에서 지렛대 하나를 잃는 셈”이라고 했다. 반면 외교부 관계자는 “북핵 6자회담은 천안함·연평도 문제와 무관하게 굴러갈 수 있다”며 “우리가 비핵화를 남북 대화 틀 안에 무리하게 집어넣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통일부는 남북관계를, 외교부는 6자회담을 중시하다보니 천안함·연평도 및 비핵화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통일부는 ‘외교부가 남북관계의 ㄴ자(字)도 모르면서 나서려 한다’는 속내이고, 외교부는 ‘통일부가 핵문제의 ㅎ자(字)도 모르면서 개입하려 한다’는 불만이 깔린 것 같다는 분석도 있다.

한편 천 수석은 이날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민주평통회의에서 “비핵화가 제대로 안 되는데 (북이) 사과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풀어줄 수는 없다”고 했다.

또 “흡수통일은 우리 목표가 아니다”면서도 “북한이 스스로 붕괴를 재촉하는 일만 골라서 하고 실패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망하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천 수석은 “통일까지 대북정책의 목표는 지속 가능한 평화”라며 “북한의 선의, 김정일 자비에 의존하는 평화, 뇌물 주고받는 평화는 지속 가능한 평화가 아니다”고 했다. 이어 “북한이 비핵화하지 않고 계속 버티거나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어물쩍 넘어가려고 한다면 더 불편한 세상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통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자해 공갈을 벌일 수 있는 흉기가 핵무기”, “북한이 정초부터 스토킹 수준으로 (남북 대화를) 제안 중”이라는 말도 했다.

/안용현 기자 ahny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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