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문장과 상상력은 규범 문법과 표준어의 강제로부터 얼마만큼 자유로울 수 있는가. 기성 문인들의 작품에서 문법적 오류를 지적하고 비판한 시인 권오운씨의 책이 보도(본보 3일자)된 데 대해 소설가 이윤기씨가 3일 반론을 제기했다. 시인 고은씨도 “권씨가 내 시를 잘못 읽은 오류를 범했다”는 전화를 걸어왔다. 우선 이윤기씨의 반론을 게재, ‘문체 논쟁’의 단서를 제공한다. /편집자

‘알만한 사람들이 잘못 쓰는 우리말 1234’를 펴낸 권오운님께 먼저 경의를 표한다. 머리맡에 두고 볼 책이 한 권 늘었다. 하지만 우리 말살이 글살이를 감시하는 우리말 지킴이 역할은 내가 자청해서 해오고 있는 노릇이기도 해서 몇 자 적는다.

그가 나의 글에서 지적하고 있는 ‘알듯 모를듯한 단어’ 중, 이 지면에 보도된 8개에 대해 해명하고 싶다. ‘저리해왔다’, ‘새비릿하다’, ‘잣아서’, ‘뒷짐질’, ‘다려’, ‘을박다’, ‘묵근하다’, ‘속닥하다’ 중에서 명백하게 잘못 쓴 것으로 내가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저리해왔다’ 하나뿐이다. ‘저려왔다’로 쓸 것을 그랬다. 앞으로는 주의하겠다.

하지만 ‘새비릿하다’, ‘잣아서’는 전주 출신 작가 김준일 형한테 배운 말이다. ‘비릿하다’에 ‘새’라는 강세접두사를 보탠 말인데, ‘비린내가 나는데도 어쩐지 싫지 않은’ 분위기에 아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한번 써본 것이다. ‘잣아서’도 전라도에서 잘 쓰이는 표현이다. ‘잣아서 망신을 당했다’, ‘저 친구는 잣아서 매를 맞아요’ 등에 잘 쓰이는 이 말은 ‘스스로 원인을 제공해서’라는 뜻을 지닌다. ‘뒷짐질’은 ‘뒤짐질’의 오식(오식)이다. 홍명희의 ‘임꺽정’에서 배운 말이다. 졸작 중편 ‘숨은 그림 찾기1’의 발표지면과 창작집 ‘나비 넥타이’에는 제대로 나왔는데, ‘동인문학상 수상작품집’이 나올 때 오식이 생긴 것이다.

나는 이 ‘질’에서 우리말의 새로운 조어 가능성을 본다. 북한에서는 ‘일제 사격’을 ‘불질’이라고 한단다. 나는 ‘손가락질’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앞으로는 ‘뇌물 공세’ 대신에 ‘돈질’, ‘신문잡지에 대한 끈질긴 기고’ 대신 ‘글질’을 써볼 생각이다.

‘묵근하다’는 ‘묵직하다’보다 더 ‘묵직한’ 말이다. 내 고향 경북 사람들이 늘상 쓰는 말이다. ‘다려’는 문제 없다. 원형이 ‘다리다’이니까, 인두로 대님을 ‘다림질해주는 것’이나 ‘다려 주는 것’이나 같다. ‘속닥하다’는 단촐하고 호젓한 어떤 분위기를 그리는 경상북도 지방어다.

나는 ‘속닥하다’는 말을 쓰지 않고는 나만 경험한 문학적, 정서적 풍경을 도무지 복원하지 못하겠다. 따라서 명백하게 잘못 쓴 ‘저리해왔다’에 대해서는 잘못을 인정하겠지만, 나머지 말에 대해서는 조금도 반성하고 싶지 않다. 나는 앞으로도 어머니로부터 배운 경상도 지방어, 전라도 친구들로부터 배운 전라도 지방어, 심지어는 이북 지방어까지 계속해서 쓸 것이다. 이렇게.

“권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우리 ‘속닥하게’ 술 한 잔 합시다. ” /소설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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