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후계자 김정은 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공포 정치’를 시작한 정황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12일 정부와 대북 소식통 등에 따르면 지난해 공개 처형된 주민이 전년(前年)의 3배를 넘고, ‘탈북자 무조건 사살’ 명령으로 압록강·두만강을 건너다 숨지는 주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북한군 내부에 ‘숙청 바람’이 불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공개처형 3배 늘어

김정은이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공포 정치의 막을 올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공개처형의 급증이다. 북한 사정에 밝은 외교 소식통은 이날 “작년 공개 처형된 북한 주민은 확인된 사례만 60명에 달한다”며 “2009년의 3배가 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중국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행위, 외화를 불법 유통하는 행위 등에 대해 ‘공개처형한다’는 포고문이 작년부터 곳곳에 나붙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북한의 사정을 잘 아는 다른 소식통은 “김정은이 ‘전국적으로 총소리를 울려야겠다’고 지시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김정일도 집권 직후 똑같은 짓을 했다”고 말했다.

북한군 출신 탈북자 단체인 북한인민해방전선의 장세율 사무총장은 “작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만 인신매매와 강도 등의 혐의로 최소 6명이 공개처형됐다”며 “예전 같으면 징역 몇년이면 될 범죄도 요즘은 무조건 공개처형되는 분위기”라고 했다.

남주홍 국제안보 대사는 “북한의 공개처형은 사회 혼란이 극에 달했던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이후로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였다”며 “작년엔 화폐개혁 실패의 후폭풍과 3대 세습 강행에 대한 주민 불만이 겹치자 체제 단속을 위해 북한 당국이 공개처형에 의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탈북자 무조건 사살”

탈북자에 대한 사실상의 ‘사살명령’을 내렸다는 증언도 나온다. 중국 지린(吉林)성 창바이(長白) 지역의 고위 소식통에 따르면 작년 12월 14일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을 밟은 북한 주민 7명이 뒤따라온 북한군의 사격으로 5명이 사살되고 2명이 부상당한 채 북송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대북 단파라디오 자유북한방송은 8일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 “함북 김책시에 있는 인민무력부 산하 노동련대(교도소)에 수감자가 갑자기 불어났다”며 “김정은에게 숙청당한 장령(장성)급 수감자들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체제 불안 요인을 철저히 탄압하겠다는 북한 당국의 의지는 30년 만에 개정한 노동당 규약에도 잘 드러나 있다. 북한은 최근 당 규약 제1장 ‘당원의 의무’에 ‘계급적 원수들과 온갖 이색적인 사상요소들, 비(非)사회주의적 현상을 비롯한 부정적인 현상들을 반대해 투쟁해야 한다’는 조문을 집어넣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의 정보 당국자는 “남한에서 유입된 자본주의 요소를 뜻하는 비사(비사회주의) 현상을 적극 차단하겠단 뜻”이라며 “앞으로 남한 드라마를 본다거나 남한풍의 옷차림을 한 주민들도 반당(反黨) 행위자로 몰아 공개처형할 근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같은 공포 분위기에 대해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이 ‘내가 어리다고 우습게 보지 마라’는 식으로 처음부터 무자비하게 시작한다”고 수군거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위 탈북자 최모씨는 “1998년 공식 집권한 김정일은 ‘고난의 행군’으로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총소리를 울려라’고 인민보안부(경찰청에 해당)에 지시해 절도범까지 총살시켰다”며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고 김정은도 아비가 했던 짓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용수 기자 hejsue@chosun.com

/윤일건 기자 yooni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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