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 고위급 회담과 일-북 수교협상이 3월부터 잇따라 열릴 것으로 보여 한반도 주변은 작년 9월 발표된 ‘페리 구상’에 따라 본격적인 대화분위기가 조성될 전망이다.

윌리엄 페리 미국 대북정책 조정관의 보고서에 담긴 포괄적 대북 접근방안이란, 단기적으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유예와 미국의 대북제재 완화, 한국과 일본의 바람직한 환경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기적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중단과 한-미-일 3국의 상응한 보상, 장기적으로 한반도 냉전종식 등이 골자다.

페리 구상의 가장 큰 효과는 미-북관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북은 작년 9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유보와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해제’에 합의한 데 이어, 포괄적 접근구상을 본격 논의할 고위급 회담을 3월중에 개최하기로 했다.

이번 베를린 실무 회담에서는 고위급 회담에서 논의할 ▲연락사무소 개설 ▲핵-미사일 전문가 회담 ▲경제제재 및 식량지원 등의 의제와 일정 일부도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고위급 회담에서 양국이 발표할 ‘공동발표문’ 내용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북 문제에서 가시적 성과를 바라는 미국 클린턴 행정부와, 북한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미국 공화당과 맞서기를 꺼리는 북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경우, 관계개선 속도는 빨라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 북한의 관계정상화도 급류를 타고 있다. 일본과 북한은 2월 베이징(북경) 에서 국장급 예비회담을 갖고, 수교회담 재개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한국 정부의 한 소식통은 “일-북 회담은 92년까지 8차례나 진행하다가 중단된 것을 재개하는 것이라, 양측의 걸림돌만 해소되면 언제든지 재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양국간에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 ▲북송(북송) 일본인처 고향방문 ▲청구권 협상 등의 현안이 놓여 있다. 외교소식통들은 기본적으로 일-북 모두 수교를 목표로 하고 있어, 북한측이 성의를 보이고 일본측이 북한에 식량 지원 등의 조치를 취할 경우, 쉽게 풀려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꼭 낙관적인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미국과의 고위급 회담 개최에만 응한 것이지 회담에서 논의할 내용(페리 구상)까지 수용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북한이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협상속도를 적절히 조절하면서 양쪽에서 최대한 실리를 취하는 전술을 구사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작년부터 외부지원을 통해 식량난이 어느 정도 해소돼, 미-일과의 관계개선을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당국자들은 “3국이 ‘정책조정그룹(TCOG)’ 회의를 통해 대북정책 추진 속도를 적절하게 조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하원기자 may2@chosun.com

◇미-북, 일-북 회담 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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