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이제 키워드는 문화다’, ‘문화가 강한 자가 이긴다’란 말들이 자연스럽게 떠돌아다닌다. 그러나 이 문화를 경제 사회 등 실생활 차원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프랑스 문화비평가 기 소르망과 영국 기업메세나(Mecenat:문화예술지원을 뜻함. 로마정치가 이름서 유래)협회 사무총장 콜린 트위디 등 두 명의 석학이 한국을 찾아 ‘문화의 세기’ 생존방법을 이야기한다. 둘이 만나는 자리는 7일 오후 3시 전경련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리는 국제심포지엄. 한국 기업메세나협의회 등이 공동으로 마련하는 행사로 주제는 ‘21세기의 대응: 기업과 문화예술의 연대’다.

아직 문화는 고상한 장식품 수준에 머물고 있을 뿐 그 실천적 전략적 가치에 대한 인식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것이 우리 사회의 실정이다. 두 사람의 발제를 중심으로 문화와 경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모색해 본다. /정재연기자 whauden@chosun.com

◈문화의 경제적 가치 기 소르망

경제 교류는 상품과 서비스를 주고받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문화도 오간다. 우리는 영국 물건을 살 때 영국이란 나라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 이미지에 따라 상품의 가격이 좌우된다. 바로 ‘문화적 부가가치’다. 선진국을 보라. 하나같이 강렬한 문화적 이미지를 자랑한다. 독일? 튼튼하다. 기술력 높다. 프랑스? 패션 대국. 일본? 정확하다. 미적 감각이 있다. 미국? 품질이 우수하다. 서비스가 훌륭하다. 이 같은 고정관념은 실제와는 전혀 다른 허상, 혹은 눈속임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2차대전 후 일본의 재단과 기업이 손 잡고 일본 극단(극단) 등 문화예술을 조직적으로 세계 시장에 홍보하기 시작했다. 60년대 일본 문명, 일본 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예술을 통해서다.

한국은 확실한 문화적 이미지와 문화적 부가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솔직히 말해 아니다. 물론 한국 상품은 팔린다. 프랑스인은 한국 물건이 싸니까 산다. ‘한국’ 상품이라서 사는 게 아니다. 문화는 세계 각국의 ‘상대적인 경제력’을 결정한다. 한국 문화는 훌륭하다. 그러나 한국의 문화적 이미지는 그렇지 못하다. 문화는 고이 모셔놓는 게 아니고, 북한 당국이 대대적으로 홍보하려는 것 같은 민속놀이도 아니다. 88 올림픽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당시 한국이 현대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방침 아래 ‘현대성’만 강조됐을 뿐, 독창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 전통을 찾아다니던 서방 기자들은 결국 ‘보신탕 죽이기’에 눈을 돌렸다. 서구사회가 한국에서 ‘비(비) 서구적 대안문화’를 찾으려는 마당에 서구 베끼기가 무슨 소용 있었겠는가. /프랑스 문화비평가

◈문화와 비즈니스의 하모니 콜린 트위디

문화는 이제 빵 위에 덧발라진 잼이 아니다. 빵 그 자체다.

그동안 문화적인 노력을 통해 도시가 관광이나 경제 중심지로 자리잡는가 하면 기업이 막대한 홍보 효과를 얻는 예는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한걸음 더 나아가 문화가 곧 지식이고, 경제다. 현재 성장 잠재력이 가장 높은 분야를 살펴보자. 오디오 비주얼, 게임, 관광, 레저, 오락, 전자상거래다. 그래픽 아티스트, 컴퓨터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등이 결합한 작은 회사들이 뉴욕, 런던, 파리 등 대도시마다 무수히 생겨나고 있다. 기업에 예술은 더이상 적선의 대상이 아니다. 미래발전을 위한 무한 자원이다. 기업이 문화를 지원하는 ‘스폰서십’이란 개념은 낡았다. 이제는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파트너십’을 이야기하자.

영국 기업 20군데가 모여 얼마전 문화 예술을 일터로 옮겨오는 프로그램 개발에 앞장섰다. 이들처럼 요즘 많은 기업들이 사무공간에서 미술전시회를 열거나 예술가들의 공연을 추진하고 있다. 아예 예술가를 회사에 상주시키는 업체도 늘고 있다. 한 법률회사는 ‘말’을 가지고 먹고 사는 변호사들에게 ‘말’의 아름다움을 상기시켜줄 시인을 모셔왔다. 막스 앤 스팬서, 아더 앤더슨 등 기업들은 직원들을 위한 미술 동호회를 만들고 정기적으로 화가를 초청해 그림 감상과 대화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예술의 세계와 비즈니스의 세계는 지난 몇백년 동안 양극화돼왔다. 물론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처럼 좌·우뇌가 조화를 이뤘던 사람들도 있지만. 두 세계가 하나로 일치되는 시대, 바로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과 궤를 같이하는 신 르네상스다. /영국 메세나협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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