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방북한 덩샤오핑이 김일성 동상이 너무 많은 걸 보고 ‘이렇게 동(銅)이 넘칠 정도면 우리 지원이 필요 없는 것 아니냐’며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이 말에 열받은 김정일이 동상을 마구 만들어 2만3000개가 됐다.”

중국 공산당의 간부 양성기관인 중공중앙당교의 조호길 교수는 20일 조선일보와 통일연구원이 ‘3대세습 이후의 북한과 중국’을 주제로 주최한 한·중 국제학술회의에서 북·중 관계가 겉보기처럼 돈독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조 교수에 따르면 북한이 중국에 배신감을 느낀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북한은 주민 100만명 이상이 굶어 죽은 1996~1997년 중국이 보인 냉담함에 크게 실망했다.

당시 중국 지린(吉林)성에는 대풍이 들어 건조를 못 한 알곡이 썩어난다는 보도가 잇따랐지만 정작 중국은 미국(50만)보다도 적은 40만만을 북한에 지원했다. 그나마도 “식용이 아닌 사료용을 지원했다”며 북한은 분노했다.

김흥규 성신여대 교수도 “북·중관계는 상대적으로 불신의 측면이 더 강한 관계였다”며 “김정은 시대의 북·중관계가 냉전적 혈맹관계로 복귀한다는 관측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김강일 중국 옌볜(延邊)대 동북아연구원장은 “북·중 관계가 좋아진 건 작년부터”라며 “중국은 북한의 1·2차 핵실험 이후 배신감을 느꼈지만 결국 북한은 압박으로 문제를 해결할 체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흥규 교수는 “중국은 한반도의 현상유지, 안정과 평화를 강조하게 됐는데 이것이 마치 북을 지원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줬다”면서도 “연평도 사태는 중국으로 하여금 현재의 대북정책이 과연 중국의 국가 이익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 및 내부 논란을 크게 증폭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은 시대 북한의 개혁·개방 가능성과 관련, 김강일 교수는 “북한이 전면적인 개혁·개방을 시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도 “(당국이) 어쩔 수 없이 시장경제의 확장과 발전에 어느 정도 순응하는 정책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조호길 교수는 “북한의 경제개혁이 성공하려면 경제 총량 중 과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군수공업을 민간공업으로 전환시켜야 하지만 북한이 직면한 국제정세에서 이는 불가능하다”며 “개혁·개방의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개발협력센터 소장은 “장차 북한에서 개혁·개방이란 명분하에 어떤 행위가 이뤄지겠지만 굉장히 엽기적인 것이 될 것”이라며 “(북한이) 중국에 위화도를 100년 임차해주고 항만을 떼어주는 걸 개혁·개방이라 할 순 없다”고 했다.

한편 조호길 교수는 지난 9월 북한의 3차 당대표자회와 관련 “김정은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갖춘 김경희·장성택은 최고 핵심층에 못 들어간 반면, 핵심층에 진입한 최룡해 등은 김정은에 대한 영향력이 떨어진다”며 “이는 김정은이 독자적으로 권력을 장악할 시점까지 누구도 권력 독점을 못 하게 한 조치”라고 풀이했다.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는 “북한은 유일 후원국인 중국에 어떻게 하면 종속되지 않을까를 놓고 권력 투쟁 가능성이 있다”며 “당대표자회가 연기된 것도 이런 사정과 관계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용수 기자 hejsu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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