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노무현 정부가 ‘햇볕’을 비추는 동안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10년 전 존재가 불분명했던 북한 핵무기는 10여개가 됐다고 한다.

북한과 국내 좌파들이 ‘없다’고 했던 우라늄농축 설비(원심분리기)는 1000여개가 존재하는 것으로 지난달 확인됐다. 청와대 당국자는 “햇볕정책 10년의 결과가 지금의 위기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양인성 기자 in77@chosun.com


◆플루토늄 핵 시설 동결해놓고 지하에서 우라늄탄 개발

1998년 2월 김대중 정부가 출범할 때만 해도 북한의 핵(核)은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플루토늄 핵무기 개발에 필수적인 핵실험도 없었고, 우라늄 핵개발 의혹도 불거지지 않았다.

겉으로는 핵 시설 동결과 경수로를 맞바꾼 미·북 제네바 합의(1994년)가 지켜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통일부는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북한이 핵무기 10개 내외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1998년 존재가 불확실했던 북한 핵무기가 10년을 거치면서 10여개로 늘어난 것이다.

특히 북한은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Kelly) 미 국무부 차관보가 처음 제기했던 우라늄농축 의혹에 대해 줄곧 부인해 왔다. 국내 좌파들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불거진 이 의혹에 대해 “미국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이 실체를 부풀려 동북아 화해 무드를 차단하려 한다”며 북한을 거들기도 했다.

“미국측 통역이 잘못됐을 것”이란 말까지 흘렸다. 2007년 2월 당시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북한에 고농축우라늄(HEU)이 있다는 어떤 정보도 없다”고 했었다.

그러나 ‘진실의 문’은 8년 만에 열렸다. 북한 스스로 지난달 초 방북한 미국 핵 전문가 헤커(Hecker) 박사에게 우라늄농축 설비인 원심분리기 1000여대를 보여준 것이다. 우라늄 핵무기는 땅굴 등 좁고 은밀한 곳에서도 개발할 수 있고 플루토늄탄과 달리 핵실험도 필요 없다.

“원자로를 돌려 추출한 플루토늄이 원료인 핵무기보다 더 위협적”(전성훈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이란 평가다. 원심분리기 1000대는 900㎡(약 300평)만 있으면 설치할 수 있고, 연간 핵무기 1개 분량의 우라늄농축(20㎏)이 가능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안보부서 당국자들은 최근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북한의 핵 능력을 확 키웠다”고 말한다. 그러나 청와대 당국자는 “원심분리기 1000대가 장난감이냐”며 “지난 10년간 은밀하게 개발했던 장비를 최근 꺼내 조립한 것”이라고 했다. 2005년 탈북한 군사과학분야 고위관계자는 “2000년초부터 원심분리기 제작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초는 남북이 첫 정상회담을 준비하던 시점이다.

과거 정부는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했지만 1차 합의문에는 ‘핵’이란 글자가 아예 없고, 2차 합의문에는 “핵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는 문구만 넣었다.

◆김정은 등장과 함께 공개한 ‘무수단 미사일’

김정은은 지난 10월 10일 노동당 창건일 군 열병식에서 공식 등극 행사를 가졌다. 이때 북한은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무수단’을 외국 언론에 처음 공개했다. 2007년 4월 등장한 이 미사일은 미국의 아·태지역 전략 거점인 괌까지 사정권(3000~4000㎞)에 넣을 수 있다.

북한은 지난 10년 동안 핵과 미사일 능력을 동시에 키웠다. “핵무기를 미사일에 장착해야 한·미를 직접 위협할 수 있기 때문”(백승주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이란 분석이다. 북한이 1998년 8월 발사한 ‘대포동 1호’ 미사일은 1600여㎞를 날아갔다.

‘김정일 1기 체제’가 시작하는 최고인민회의(10기) 개막 나흘 전이었다. 2006년 7월의 ‘대포동 2호’는 발사 40여초 만에 공중 폭발했지만, 2009년 4월의 장거리로켓은 3200여㎞를 날아갔다. 지금 북한은 미국 알래스카와 괌을 공격할 수 있는 장거리미사일(사정거리 6700㎞)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북한은 스커드미사일(사정거리 300~500㎞) 600여발, 노동미사일(사정거리 1300㎞) 200여발을 보유 중이다.

/안용현 기자 ahny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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