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1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지난 8월 감청을 통해 (북한의) 서해 5도 공격 계획을 확인하지 않았느냐”는 의원 질문에 “그런 분석을 했다”고 답했다.

북한의 연평도 공격 3개월 전에 도발 징후를 파악했다는 얘기다. 우리 군(軍)도 도발 이틀 전 북한군 4군단이 예하 122㎜ 방사포(다연장로켓) 1개 대대를 황해도 강령군의 개머리 포(砲) 진지에 이동 배치하고 사격 준비를 진행한 움직임을 포착했다.

국정원은 공격 3개월 전, 우리 군은 도발 직전에 북한군의 이상 징후를 파악한 셈이다. 그러나 누구도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예견하지 못했고 사전 대비도 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우리 정보 당국의 대북 정보 판단 능력이 부족하거나 해이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직 정보 당국자는 “정보 판단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설마’ 하는 생각”이라며 “2차 대전 때도 미군이 설마 하다가 진주만 공격을 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반복됐다는 점이다. 지난 3월 천안함 폭침 때도 우리 군은 어뢰 공격 15시간쯤 전에 북한의 잠수정 등이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김태영 국방장관은 “그 당시 정보 판단 상황으로는 심각하게 보지 않았다”고 했고, 한민구 합참의장은 “북한 잠수함정은 1년 중 (소재 등이) 식별되지 않는 날이 상당수 된다”고 했다. ‘설마’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날도 한나라당 이범관 의원(정보위)은 “북한이 상시적으로 그런 위협적 언동을 많이 해왔으므로 민간인 포격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게 국정원 입장”이라고 말했고, 민주당 최재성 의원(정보위)도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 정도를 공격하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정보 당국의 판단은 3대 세습과 맞물려 갈수록 노골적인 북한의 도발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북한은 올해 1월 서해 상에서 NLL 북쪽으로만 수백 발의 해안포를 쐈다. 이어 8월에는 일부 포탄을 NLL 남쪽으로 떨어뜨렸다. 우리측의 마지노선이 어딘지를 계속 실험한 것이다. 다음 수순은 서해 5도를 직접 겨냥할 수 있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우리측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은 것이다. 특히 천안함 이후 북한과 관련된 첩보라면 크거나 작거나 예리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었지만 우리 정보 당국은 평소 때처럼 판단했다. ‘안이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또 정부 소식통은 “국정원과 군 당국 사이의 정보 교류가 원활한지, 확실한 ‘정보 컨트롤 타워’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도발 3개월 전 감청 정보와 며칠 전 이상 징후를 예민하게 종합했다면 이번처럼 무방비로 당하지 않았을 것이란 관측이다. 정보기관과 작전기관 사이의 공조가 중요한데 이 부분에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얘기가 들린다. 이 소식통은 “미국은 9·11 테러를 겪은 직후 16개 정보기관을 통합하는 작업을 했다”며 “물론 몸집만 불렸다는 비판도 있지만 우리처럼 천안함 사건을 겪고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무사 참모장 출신인 송대성 세종연구소장은 “9·11 테러 때처럼 이번 연평도 공격도 징후가 간헐적으로 들어오니까 신경을 안 쓴 것 같다”며 “정보 판단은 안보의 생명인데”라고 했다.

우리 정보 당국이 햇볕정책 10년 동안 북한 정권의 본질을 잊어버렸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민간연구소의 연구원은 “북한 정보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분석할 필요가 있는데 남북 교류·협력을 먼저 생각하면 이적(利敵)행위도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년 동안 북한 정보 전문가들이 대거 사라졌다는 말도 들린다. 특히 최근까지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물밑 접촉설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우리 정보 당국이 북한 정보를 소극적으로 해석한 것 아니냐는 추정까지 제기된다.

반면 전직 정보기관 간부는 “예상을 뛰어넘는 적의 기습 공격까지 예측하기는 어렵다”며 “정보 판단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안용현 기자 ahny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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