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정부의 외교 전문(電文)을 통해 피살 당시의 상황이 드러난 고(故) 박왕자(사망 당시 53세)씨는 지난 2008년 7월11일 금강산 관광을 갔다가 북한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금강산 관광이 1998년 시작된 이래로 남측 방문객이 관광 도중 안전사고나 신병(身病)으로 숨진 일은 있었지만, 북한군의 총에 살해된 것은 처음으로, 엄청난 파장을 초래했다.

사건 이후 북한은 “박씨가 관광객 통제구역을 지나 북측 군 경계지역에 진입했고, 초병의 정지 요구에 불응하고 도주해 발포했다”고 금강산관광 사업자인 현대아산에 통보했다.

박씨의 시신을 검안한 결과, 등에서 가슴을 관통하는 부분과 왼쪽 엉덩이 부근에 각각 한 발씩 총상을 입었고, 사인은 총상으로 인한 호흡부전으로 밝혀졌다.

북한은 “사건 시각인 오전 4시50분쯤은 일출 전이라 어두웠고, 관광객의 바닷가 출입이 제한되는 시간대(0~6시)이기 때문에 본인 불찰”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총소리가 들린 시간이 일출 이후인 오전 5시15분쯤이고, 통제구역에 관광객이 실수로 들어가지 않도록 초병을 세우지 않은 것은 북한 잘못”이라며 진상 규명을 위한 공동 조사를 요구했다. 하지만 북측은 “관광객이 사망한 것은 어쨌든 유감이지만 공동 조사에는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박씨의 피격 사건 이후 지금까지 금강산 관광은 중단된 상태다. 우리 정부는 사건 발생 직후부터 북측에 ▲진상 규명 ▲신변안전 보장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했지만, 북측은 지금까지도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지난 4월 이산가족면회소를 비롯해 소방서, 문화회관 등 정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소유한 금강산 부동산에 ‘몰수’ 딱지를 붙이고 현대아산 등 민간업체들이 보유한 각종 관광 인프라를 동결했다.

북한은 이후로도 금강산 관광 재개를 계속해서 요구해 왔다. 지난 9월 이산가족 상봉행사 논의를 위한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에서는 상봉을 위해 금강산 관광이 재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강산 지구 내 모든 시설이 몰수·동결된 만큼 금강산면회소를 이용하려면 금강산 관광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논리였다.

북한은 연평도 포격 도발을 감행한 다음 날인 지난 24일에도 “남조선 당국이 진정 북남관계 개선에 관심이 있다면 부당한 구실에 매달리지 말고 (금강산) 관광재개를 위한 회담탁(테이블)에 나와야 한다”며 “우리는 악화된 북남관계를 풀고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실현하기 위해 대화와 관계 개선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고 억지를 부렸다.


/조선닷컴
채민기 기자 chaeplin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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