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에 두고온 딸과 다시 꼭 만나자고 했는데…이런 일이 발생해 너무도 안타깝고 절망적입니다."

25일 열릴 예정이었던 남북 적십자 회담이 연평도 피격 사건으로 무기한 연기되면서, 이산가족 상봉을 꿈에도 그리던 실향민들이 속을 태우고 있다.

여든을 훌쩍 넘긴 이들은 삶을 다하기 전에 북에 두고온 피붙이를 한 번이라도 볼 수 있기를 그토록 바랐지만, 연평도 피격으로 간절히 소원했던 이 꿈이 물거품이 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조문선 이북5도위원회 황해도도민회장(86)은 "피난 내려올 때 만삭이었던 처를 두고 내려왔는데 나중에서야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모른다"며 "3년전 이산가족 상봉 때 환갑을 앞둔 딸(당시 58세)을 처음 만나 눈물을 쏟으면서 꼭 다시 만나자고 했는데…"라고 했다. 그는 "딸을 찾기 위해 중국을 몇차례씩 가서 그쪽 사람들한테 돈을 쥐어주고 고향 황해도 연백군 주변 소식을 수소문한 적도 있다"면서 "마침내 딸을 찾아 처음 만났는데, 이번 사건으로 첫 만남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속을 끓였다.

조 회장은 연평도 피격 사건이 발발한지 3일째인 이날 황해도도민회원 30여 명과 함께 서해 접전지를 찾아 먼발치에서나마 고향 땅을 바라보며 위안을 삼았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홀로 고향을 떠났다는 김용빈 옹(85)도 평안북도 영변읍에 두고온 가족들이 눈 앞에 어른거리기는 마찬가지.

김 옹은 "열 아홉되던 해에 생각하던게 있어 부모님과 조부모님, 형제들을 고향에 두고 남으로 내려왔다"면서 "지금껏 들은 소식이라고는 네살 터울의 남동생이 인민보위부에 끌려가 14년형을 받고 나중에 즉결처분 됐다는 소식 뿐, 다른 가족 얘기는 전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번도 가족들을 잊어 본 적이 없다. 가족 생사라도 확인하기 위해 그쪽(북한) 소식에 정통한 정보원들도 만나봤지만 영변은 핵개발 지역이라 특히나 소식 듣기가 어려웠다"면서 "이번 사건으로 인도적 차원으로 그동안 진행된 이산가족 상봉마저 없어진다면 가족과의 인연은 영영 끊기고 만다"고 불안해 했다.

김 옹은 하지만 이번 피격 사건에 대해서는 "민가에까지 포격을 한 북한의 행위는 철면피들이나 하는 만행"이라면서 "이산가족 상봉은 인도적차원에서 계속 이뤄져야 하지만 피격 사건의 철저한 책임과 사과가 전제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통일부는 19번째 이산가족 상봉 일정 등을 논의하기 위해 이날 열릴 예정이었던 남북적십자회담을 무기한 연기토록 하고, 대한적십자사의 대북 수해지원 등 민간차원의 대북지원도 잠정 유보하도록 했다.

이산가족 상봉은 지난 2~3일 열린 2차 상봉까지 2000년부터 18차례에 걸쳐 진행됐으며, 남측에서만 1만405명 등 남북 이산가족 2만1734명이 만났다.

현재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하고도 아직 만나지 못한 남측 실향민은 모두 8만3000여 명에 이른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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