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송금' '로비자금'설등 의혹…수뇌부 수사확산 가능성

일본 수사 당국의 조총련 본부에 대한 압수수색 등 강경 수사에 따라 일본과 북한 간 관계가 더욱 냉각될 전망이다.

◆ 수사 =일본의 금융·수사 당국은 지난 99년 파산한 조총련계 신용조합 조긴에 대한 수사를 올 들어 계속해 왔다. 그 결과 불법 융자된 돈이 조총련 운영자금으로 흘러들어간 사실을 최근 확인했으며, 정경생 조긴도쿄(朝銀東京) 전 이사장과 강영관 조총련 전 재정국장을 잇따라 구속했다.

구속된 강씨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임을 받아온 허종만 조총련 책임부위원장의 최측근 인사. 때문에 허 부위원장에 대한 수사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만일 그 선까지 수사가 이뤄진다면 조총련 조직 전체가 흔들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노동신문은 “부당한 탄압을 당장 걷어치우고 자주적인 민족금융기관인 신용조합을 법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북한의 우려를 반영했다.

또 하나의 관심은 돈의 ‘사용처’다. 일본 정계와 언론은 횡령한 돈이 북한으로 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이케 유리코(보수) 의원은 줄곧 부정송금 의혹을 지적하며 “금융사건 아닌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건”이라 말했다. 또 우에다 기요시(민주) 의원은 “조긴을 경유해 북한에 보내진 돈이 화학병기 제조에 사용된 의혹이 있다”면서 “이들에게 투입된 공적자금이 북한에 흘러가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금이 확인될 경우 ‘동포가 피땀 흘려 번 돈을 정권자금으로 썼다’는 도덕적 비난도 피할 수 없다.

이와 함께 정치인들에 대한 로비자금으로써의 사용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친북한계 의원들에게 조총련이 정치자금을 제공했는지, 그 돈이 신용조합에서 나왔을지에 대한 수사 여부도 관심이다.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한국 정치권까지 휩쓸려 들어갈 가능성을 한국측 관계자들은 우려하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이미 “한국의 친 북한계 국회의원에게도 쓰였다”는 한 조총련계 기업인의 말을 보도했다. 수사과정에서 이런 진술이 나온다면 일본 수사당국은 한국과 북한에 대한 ‘막강한’ 카드를 손에 쥐게 되는 셈이다.

◆ 일·북 관계 =조총련에 대한 수사와 관련,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이번 수사와 일·북 관계는 별개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수사는 수사”라는 말도 덧붙여 외교적 문제와는 별도로 수사는 계속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도쿄의 한 고위 외교소식통도 “일본 정부 핵심부는 이번 수사를 끝까지 계속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29일 외교공관에 준하는 대접을 해왔던 조총련본부에 경찰이 압수·수색을 강행한 것으로 일본 정부 입장은 명확해졌다. ‘외교적 예우를 하지 않는다’는 상징적 의미도 클 뿐 아니라, 조총련 내부 자료가 일본 정부 수중에 넘어가 북한으로서도 곤혹스런 처지를 당할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이 이 같은 강경 자세를 보이는 데 대해 경시청 관계자는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가 가까운 시일 내에 이뤄질 가능성이 없다고 본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 정권들의 대북 온건정책에도 불구, 북한이 일본인 납치 문제 등에 성의를 보이지 않은 데 대한 강경파들의 불만이 정부 내에 높다”고도 설명했다./도쿄=권대열특파원 dy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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