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연구원(EAI)이 4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개최한 ‘북한 2032: 선진화로 가는 공진전략’ 세미나에서 황지환(명지대)·조동호(이화여대)·하영선(서울대)·우승지(경희대) 교수(왼쪽부터)가 토론자로 나서 북한의 20년 후 모습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동아시아연구원(EAI) 제공


동아시아연구원(원장 이숙종)은 지난 2년여 '북한선진화 전략팀'이 북한의 20년 후 청사진을 연구한 결과를 갖고 4일 '북한 2032:선진화로 가는 공진(共進)전략'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세미나에선 2012년 무렵부터 시작될 '포스트 김정일 시대'를 기점으로 20년에 걸쳐 북한의 선진화를 위해 북한은 물론 남한과 국제사회가 협력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됐다. 이른바 북한과 주변국의 '공진화(共進化·coevolution)'란 개념이 이들 연구팀의 핵심 개념이었다.

연구팀을 이끈 하영선 서울대 교수는 "김정일 후계체제가 21세기 무대의 일원으로 서기 위해선 선군정치에서 벗어나 '핵 없는 신생존전략'을 추진해야 한다"며 "한국과 주변 세력도 햇볕과 제재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북한 번영 협력체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김정은 후계체제가 맞이하게 될 절박한 국내외 상황이 역설적으로 북의 전략적 결단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분야별 연구진을 대표한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는 "햇볕 정권의 '주면 변한다'는 명제도, 이명박 정부의 '안 주면 변한다'는 명제도 틀렸다"면서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잘 줘야'하며, 북한에 선군(先軍)이 아닌 선경(先經)·선민(先民)정치가 궁극적으로 발전과 체제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정교한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말했다.

'공진'전략의 현실성과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토론자들의 의견이 갈렸다. 권영세 한나라당 의원은 "북한이 변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으로 지원한 것도 실패했지만, 북한 붕괴와 흡수 통일만 바라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당장 핵을 포기시키거나 체제를 바꾼다는 목표보단 긴 호흡을 갖는 게 맞다"고 했다.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는 "북한에 핵(核)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아바타 같은 존재가 됐다"면서 "북에 핵을 포기하라고 강요하기보다는 핵이 불필요한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안보통일부장은 "김정은 후계체제가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군(軍)에 대한 절대 의존에서 벗어나 당(黨)의 중요성이 복원되는 징후가 보이고 있다는 것은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반면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원 경제안보팀장은 "현실을 덮어두고 또 다른 햇볕정책을 제시하는 것은 북한의 현 상태를 공고화해줄 뿐"이라고 했고, 이숙종 원장은 "북한 체제를 보장해준다는 선언이 국내에서 수용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창균 조선일보 정치부장은 "북한을 포함한 각국이 선의만으로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은 비현실적 낙관"이라며 "특히 김정은에게 국제 협력과 개방을 결단하는 '계몽수령'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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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행 기자 polyg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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