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억류됐다가 43일 만에 풀려난 로버트 박씨가 2일 북한 인권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진자료를 보여주면서,“ 북한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역사가 우리를 심판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북한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끔찍한 일을 겪었지만 북한인권과 민주화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인권 문제를 위해 나서봐야 소용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북한 억류 43일 만에 풀려났던 한국계 미국인 북한인권운동가 로버트 박(29)씨는 2일 인터뷰에서 “내가 고통받은 이야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나서야 북한이 달라진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는 2일 서울 모처에서 이뤄졌다. 박씨는 작년 12월 25일 성경과 김정일에게 보내는 편지 등을 들고 북한으로 갔다가 지난 2월 5일 풀려났다. 그는 북한에서 겪은 폭력과 성고문 등으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후유증 때문에 미국 LA와 애리조나주 투손 등의 병원에 9개월 동안 입원해 치료를 받다가 지난달 중순 한국으로 왔다. 박씨의 안색은 창백했고 피곤해 보였다.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북한 회령 쪽을 향해 가는데 북한 경비병들이 내게 손전등을 비췄다. 나는 ‘남한 사람들과 미국 사람들은 여러분을 사랑한다’고 외쳤다.

그 이후 너무 끔찍한 일을 당해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감시원들이 나를 ‘요덕수용소’로 보내겠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형하겠다는 위협도 받았다.”

박씨는 “북한에서 인간으로서 너무나 끔찍한 일을 겪은 후 죽고 싶었다. 생각하면 자살하고 싶은 그 구역질 나는 일들을 잊기 위해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북한에서 겪은 일 때문에 나는 인간으로서 파괴되어 앞으로 제대로 살 수도 없고, 사람을 만날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또 “앞으로 가족을 갖거나 결혼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에서 내가 접촉해본 고문자, 감시원, 경찰 등은 다 옳고 그른 걸 알지 못하고 잔인하다”고 했다.

박씨는 북한에 들어간 후 회령, 청진을 거쳐 평양에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디서 얼마 동안 머물렀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북한에 간 건 “우발적으로 한 일이 아니라 오래 생각하고 준비한 것”이라고 했다. “죽을 각오로 북한 국경을 넘으며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해 김정일 정권에 부담을 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박씨는 2005년 멕시코의 빈민촌에서 선교사 생활을 하다가 동료로부터 “북한 사정은 훨씬 더 나쁘다”는 얘기를 듣고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 후 여러 단체와 일을 했다.

그는 “교회나 인권단체 등과 함께 여러 가지 활동을 해봐도, 북한의 변화는 너무 더뎠다. 겨울은 다가오는데 북한 어린이들은 죽어가고 있다. 기독교인이라면 기도 이상의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북한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했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당분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면서 “한국에서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대규모 시위 등을 할 것”이라고 했다. “대규모 단합된 활동이 있어야 북한정권을 어려움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강인선 기자 insu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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