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가한 남측 김대종씨(77)는 한국전쟁 당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처럼 형제끼리 총부리를 겨눴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대종씨는 상봉 첫날인 3일 전쟁 당시 형제가 각각 국군과 인민군으로 참전할 수밖에 없었던 슬픈 가족사를 공개했다.

대종씨는 전쟁 전 함경남도 풍산군 장평리에서 어머니와 큰형 주종씨, 큰 누나 계순씨, 작은 형 태종씨, 여동생 계화씨(69)와 함께 살았다.

전쟁이 터지자 대종씨는 1950년 10월 큰 형과 함께 군에 입대했다. 반면 공산주의자였던 작은형 태종씨는 인민군에 입대했다. 작은형은 대종씨가 국군에 입대하기 한 달 전즘 집에 편지를 보내 "전투에서 부상을 당해 한 달 동안 평양에서 치료를 받고 다시 전투에 나간다"고 소식을 전했고, 그 뒤로는 연락이 끊겼다.

대종씨는 12월 말 흥남철수 작전 때 큰형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고 이후 약 30년간 군복무를 한 뒤 79년 장교로 제대했다.

그는 "3사단 소속으로 전투에 참전했는데 그 때마다 내가 쏜 총탄에 형님이 맞지나 않을까 늘 걱정했었다"며 "이데올로기란 것이 형제지간을 갈라놨다"고 안타까워했다.

북에 두고 온 어머니와 누나 계순씨, 작은 형 태종씨는 모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날 상봉에서 대종씨는 여동생 계화씨를 만나 "내 여동생 계화, 어린 것을 두고 내려와 너무 미안하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대종씨는 "꼭 형제들을 찾으라"는 큰형의 유언대로 가족을 찾기 위해 중국을 수차례 넘나들었다. 그러나 여동생을 만나게 해준다는 브로커들에게 속아 세 차례 돈을 떼이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속다가 이제야 여동생을 만나게 됐다"며 이제 돌아가신 형님들을 대신해 내가 어머니 제사를 제 날에 지낼 수 있게 됐다"고 안도했다.

상봉 둘째 날인 4일 개별상봉에서 대종씨는 동생 계화씨는 위해 겨울옷, 의약품 등이 담긴 가방 하나를 선물했다. 그 안에는 감자깍기용 칼도 들어있었다.

대종씨는 "예전 우리 집은 땅 한 평 없이 가난했다"며 "어머니께서 동네 개울 옆 버드나무 아래에다가 감자를 심어 우리에게 주신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여동생은 오빠에게 술과 한복감을 선물했고 오빠는 "내년 설날에 네가 준 옷감으로 한복을 한 벌 해입고 가족들에게 자랑해야겠다"며 뛸듯이 기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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