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금강산이 60년 만에 만난 혈육들의 오열과 눈물 속에 잠겼다.


금강산 면회소에서 10월 30일 열린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북측의 오빠 정기형씨를 만난 남측 여동생 정기영, 기옥, 기연씨가 얼굴을 서로 비비며 반가워 하고 있다. 세 여동생은 오빠를 위해 이른 생일상을 준비했고 신발 네 켤레를 선물했다. 오빠가 60년 전 아버지를 대신해 맨발로 인민군의 짐꾼으로 북으로 갔던 기억 때문이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이번 상봉행사에 나선 남북 이산가족 가운데 최고령인 김례정(여·96)씨는 10월 30일 북한의 딸 우정혜(71)씨와의 첫 대면에서 "너를 어떻게…. 꿈에만 보던 너를 어떻게…"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상봉 전 '긴장되지 않으냐'는 질문에 "긴장은 무슨, 딸을 만나게 돼 좋기만 하지"라며 웃었던 김씨지만 막상 12살 소녀에서 칠순 노인으로 변한 딸과 마주하자 말이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가 이미 사망했을 것으로 생각해 상봉 신청 명단에도 넣지 않았던 정혜씨도 감격에 겨워 큰절을 올렸다. 눈물범벅이 된 모녀는 한동안 말없이 부둥켜안고 울었다.

정혜씨 가족은 1·4후퇴 때 '남자와 과년한 여자들만 일단 피하자'며 어린 여동생 정혜·덕혜씨만 황해도 연백에 남겨놓고 피란을 떠났다가 영영 헤어지고 말았다.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해 5년째 외출을 못해온 김씨는 딸의 생존 소식을 듣고 휠체어에 의지해 금강산까지 올라왔다. 아들 우원식(전 민주당 국회의원)씨는 "어머니로선 목숨을 걸고 상봉장행을 택한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정혜씨를 보며 "널 만나려고 이렇게 오래 살았나 봐.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어"라고 했다.

◆'맨발 오빠'에게 건넨 신발 네 켤레

"오빠, 동생들 절 받으세요."

이산가족 상봉행사 이틀째인 10월 31일 북측의 오빠 정기형(79)씨 앞에서 남측의 세 여동생 기영(72)·기옥(62)·기연(58)씨가 한복 차림으로 절을 올렸다. 떡과 미역으로 기형씨 생일상도 차린 세 자매는 선물로 털신, 가죽신 등 신발 네 켤레를 내밀었다. 60년 전 아버지를 대신해 인민군의 짐꾼으로 따라나선 오빠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사무쳤다.

1950년 기형씨 가족이 살던 경기도 안성에 들이닥친 인민군은 주민들에게 말에게 먹일 풀을 뜯게 한 뒤 이를 운반할 사람을 뽑았다. 원래 제비뽑기로 뽑힌 사람은 기형씨 부친이었지만 당시 19세였던 기형씨가 "차라리 내가 가겠다"며 가족들의 만류 속에 집을 나섰다.인민군을 따라가다 헌 신발을 잃어버린 기형씨는 길에서 만난 동네 사람에게 "신발을 사게 돈을 빌려달라"고 청했고 훗날 이를 전해 들은 기형씨 부모는 '맨발의 아들'을 평생의 한으로 여겼다고 한다.

기옥씨는 "(오빠 발) 사이즈를 알 수 없어 보통 크기로 샀는데 조금 커서 속상하다"면서도 "(돌아가신) 어머니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린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술 세 병을 가져온 기형씨는 "두 병은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산소에 뿌려주고 한 병은 이번에 오지 못한 첫째 동생에게 선물해 달라"고 했다.




남북 이산가족 1차 상봉 둘째날인 10월 31일 공동 중식 행사가 열린 금강산호텔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북측 가족들이 버스를 타고 행사장을 떠나며 손을 흔들자 한 남측 가족이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환갑노인 된 뱃속의 아들

"(네가) 아들인지 딸인지도 몰랐는데…."

1950년 추석 때 전주에서 인민군에 휩쓸려 북으로 올라간 안동근(86)씨는 당시 아내 뱃속에 있던 남측 아들 안태욱(60)씨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고향 전주를 떠나지 않은 태욱씨는 30년 전부터는 아버지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태욱씨와 함께 나온 누나 희욱(62)씨는 "왜 어머니는 같이 오지 않았느냐"고 묻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눈물만 흘렸다. 태욱·희욱씨 남매는 아버지가 행방불명된 뒤 어머니가 재가(再嫁)해 작은아버지 손에 컸기 때문이다. 뒤늦게 사정을 알게 된 동근씨는 "옛날부터 고마웠고 나도 북에서 재혼했으니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잘살라고 전해달라"고 말했다.

◆"살아주셔서 감사해요"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 구두 사 가지고 오신다더니…."

10월 31일 개별 상봉이 진행된 금강산호텔 앞에서 남측 이인숙(여·74)씨가 북측 방문단 버스 옆에 서서 동요 '오빠 생각'을 불렀다. 북측 오빠 리희명(80)씨를 태운 버스가 시동을 걸고 막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버스 차창 사이로 오빠와 손을 마주 잡은 인숙씨는 "오빠 정말 감사해요. 열심히 살아주셔서 정말 감사해요"란 말을 되풀이했다.

/조선닷컴
금강산=공동취재단 이용수 기자 hejsue@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