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수행할 목표'의 대명사

1211고지는 낙동강전투와 함께 6·25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의 하나이자 군사전략적으로도 요충지로 꼽혔던 곳이다.

1211고지라는 이름은 산의 높이로 명칭을 대신하던 전시(戰時) 군사용어가 그대로 굳어진 것인데 오늘날 북한에서는 「사활이 걸린 중대한 문제」, 「반드시 수행하거나 쟁취해야 할 과제나 목표」의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강원도 양구 동북방 휴전선 이북지역에 있으며, 북한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금강군에 속해 있다.

6·25전쟁이 발발한 후 1년이 지나면서 전선이 지금의 휴전선을 중심으로 고착되고 쌍방 간에 밀고 당기는 톱질전쟁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쌍방은 동부전선의 1211고지를 두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북한으로서는 이 고지를 빼앗기게 되면 배후의 금강산을 잃게 되고, 후방의 원산까지도 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또 이곳 전투의 결과가 전체 전선의 상황변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기 때문에 이 고지 사수에 사활을 걸다시피 했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의 전투가 벌어졌고 엄청난 양의 폭탄이 투하됐다. 인민군 최고사령관이던 김일성이 51년 9월 직접 이곳을 찾아 "1211고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며 장병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북한은 이 고지에 너무나 많은 양의 폭탄이 떨어져 고지의 높이가 1m정도 낮아졌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이 고지는 북한의 대표적인 전쟁영웅 이수복의 「영웅신화」가 창출된 곳이기도 한데 이수복은 『불 뿜는 적의 화구를 몸으로 막아 조국과 수령을 보위한 육탄영웅』이자 이 고지 사수를 상징하는 인물로 널리 각인돼 있다.

북한은 전후 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 새로운 경제계획을 수립할 때마다 새로 제시한 목표나 경제계획 수행의 관건적 문제를 1211고지에 비유하면서 그 수행을 역설해왔다. 지난 93년 기존의 중공업 우선의 경제전략에 부분적인 수정을 가해 경공업발전에 역점을 두면서 그것을 「혁명적 경제전략」으로 표현했는데 이때 노동당이 제시한 「혁명적 경제전략」을 1211고지에 빗대면서 무조건 관철을 촉구한 바 있다. 또 98년 정초 발표한 새해 공동사설에서는 『농업전선은 사회주의경제건설의 1211고지』라면서 『우리는 전국이 달라붙어 농사를 지음으로써 농업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먹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북한은 지난 55년 8월부터 김일성·김정일 생일이나 당과 국가의 주요 기념일에 즈음해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는 내용의 편지를 가지고 지정된 구간을 이어 달리는「충성의 편지전달 이어달리기」행사를 진행해오고 있는데 93년 7월 휴전협정 체결 40주년부터 이 행사의 출발지에 1211고지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김광인기자 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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