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국가주석에게 바치는… 최고의 찬사와 존경엔 새삼 놀라고… 오늘 어느 나라 백성들이 자기 나라 지도자에게 이같은 사랑과 충성을 바칠까 의심하면서, 그러나 영웅숭배와 「개인 신격화」는 구별돼야 한다고 혼자 깊이 생각했다』, 『도덕적 우월성을 추구하고 악과 계급없는 지상의 낙원을 건설하도록 택함을 받은 서민,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저 사심없는 생활태도와 인민에게 봉사하는 공동체정신만이 넘쳐 있었다』.
홍동근 목사는 평북 피현 출신으로 6·25 때 이산가족이 됐고 남한에서 목회자로서 민주화운동에 간여했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81년에 처음 방북 기회를 갖게 됐다. 그는 방북 후 『내가 본 고향나라는 듣던 것과는 달랐다. 그곳 사람들은 외세의 지배가 없는 자주하는 나라를 세우고, 주인이 되어 살고 있으며, 인간으로서 살기 위한 기본적인 필요들을 갖추고 살고 있다. 김일성 생일에나 쌀밥을 먹는다고 했던 것은 욕이었으며, 실업자도 거지도 없고 청소년범죄도 없다』(「미완의 귀향일지」중에서)고 바깥사람들에게 북한에 대한 ‘오해’를 풀 것을 설득했다. 그는 나중에 김일성종합대학 종교학과에서 강의를 하는 등 북한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가 처음 방북했던 당시에 이미 무고한 사람들이 정치범수용소에서 고통당하고 있었고, 대다수의 주민들이 만성적인 생필품과 식량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는 정녕 몰랐을까. 쌀밥을 먹고 실업자도 거지도 없던 북한에 느닷없이 대재난이 닥쳤다는 것인가. 최근 프랑스 북한인권운동가 피에르 리굴로씨도 몇 차례 전해 왔듯이 잔인한 현실 위로 계속되는 「북환환상」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북한에서 보통사람으로 살아야 했던 「인민」들이 아니었을까. 홍 목사는 「공화국」에 「애국」은 했는지 모르지만 「애족」을 했다고 볼 수는 결코 없을 것 같다./김미영기자 miyou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