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대화가 소강국면에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중서부 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우리 군초소에 총격을 가해옴으로써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 총격사건은 계산된 도발이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나, 이 것이 최근 북한에 의한 일련의 긴장조성 행위의 와중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범상히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북한군 병사 수십명이 지난 9월 두 차례에 걸쳐 군사분계선(MDL)을 침범한데 이어 지난 18일엔 북한군 경비정이 서해 북방한계선을 넘어 왔으며, 지난 22일엔 우리 군이 휴전협정을 위반해 비무장지대 내에 곡사포와 장갑차를 배치했다는 억지주장을 펴기도 했다.

북한의 이러한 긴장조성 행위는 6차 장관급회담 결렬 이후 더욱 심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이번 총격사건도 「계산된 행위」일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장관급회담 결렬 이후 책임을 남측에 전가하는 등 대남비난 강도를 높이고 일련의 긴장을 의도적으로 조성하는 것은 남한정부에 압박을 가함과 동시에 미국을 겨냥한 측면이 있다. 대량살상무기 개발·확산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미국에 어떤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한반도 긴장을 조성한 뒤 남한과 미국이 「달래기」에 나서도록 하는 전통적 수법을 그대로 쓰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것은 너무 낡은 수법이다. 미국 정부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라는 원칙을 포기하면서까지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한은 과거와 같은 방법을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사찰문제를 포함한 모든 의제를 테이블에 올려 놓겠다는 열린 자세로 미·북대화에 나서야 하며, 남북대화도 미·북대화와 연계시키는 고식적인 방법을 지양해야 한다. 그 것이 새로 재편되고 있는 국제질서에 순응하는 길이며 북한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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