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안팎의 적군파 납치범들은 평양에 정착, 그곳에서 결혼하여 아들 딸 낳고 50대의 초로가 되어 살고 있다. 그 중 한 간부 멤버인 다나카(전중의삼)는 96년 캄보디아 국경지방에서 북한 외교관 여권을 갖고 위조 달러 사용혐의로 태국 경찰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아오다가 본국송환 판결을 받고 엊그제 일본에 돌아와 쇠고랑을 찬 것이다. 범행 30년 만의 쇠고랑이다.
일본 아사히신문 보도에 의하면 신문사에 보낸 수기와 기자와의 일문 일답에서 사건 당시 인명사고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노력한 한국 정부에 사죄한다 하고 남북정상회담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사건 당시 위협 무기는 칼 몇 자루와 노리개 권총인지라 승객이 대들었던들 실패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동남아에서의 활동에 북한정부의 관여를 부정하고 평양에 있는 동료들의 생활이 괴로워 캄보디아에서 무역회사를 경영했을 뿐이라고 했다.
피랍 끝에 석방되어 본국에 돌아가게 된 승객들은 적군파들과 이별 파티를 벌였던 일이며 돌아가 기자회견에서 이 납치 적군파와 정들었다고 말한 이도 있었던 생각이 난다. 이 같은 은연 중의 일부 동정을 비난한 글을 읽은 기억도 난다. 하이재킹 후에도 적군파들은 보다 과격해져 총포강탈·은행강도·폭탄테러·인질농성 등을 벌여왔고 산중 아지트에서 남녀 적군파의 전라 시체들이 발견되기도 했는데 상호 간의 린치살인마저 자행했던 것이다. 이 적군파가 과격해진 데 대한 많은 조사가 있었는데 ‘그릇된 전후교육의 피해자’요 ‘경찰의 강경한 데모 규제에 대한 적대의식 때문’이라는 등 세상을 보다 나무랐었다. 30년 만에 쇠고랑 찬 이 적군파에 대한 시민의 태도와 당국의 처리가 그래서 주목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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