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적십자회담의 타결은 종래의 남북대화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다.

과거 소모적인 힘겨루기 중심의 남북 대화가 이제는 협상에 의한 문제해결 방식으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음을 뜻한다.

무엇보다 김대중(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간 6·15 공동선언의 실천력이 뒷받침됐다. 회담 초반만 해도 양측은 비전향 장기수와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 시기의 선후(선후) 문제에 대한 견해차로 난항을 겪었다. 소모적 대화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낳았다.

그러나 남북이 회의를 거듭하면서 한발짝씩 양보,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것이다.

남측은 적십자회담 개최 일자 확정, 면회소 설치 시기 명문화에 신축성 있게 대처했고, 북측은 비전향 장기수 송환 시기,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에서 양보했다. 특히 우리 측 제안을 상당부분 받아들인 북측의 양보자세가 돋보였다. 이 과정에서 우리 측이 고위 레벨을 통해 북측에 남북정상회담의 정신을 강조해, 북한 고위층에서 실무자들에게 ‘통 크게 하라’는 메시지가 내려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더라도 이는 김정일 위원장이 서명한 내용은 어떻게든 실천한다는 북한의 의지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9월 적십자회담은 12월 10차 회담 이후 14년7개월 동안 중단된 남북 적십자 본회담이 재개되는 의미도 갖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측은 9월 초 비전향 장기수 송환 직후 열릴 적십자회담을, 인도적 문제를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틀인 ‘본회담’ 성격으로 간주하고 있다.

따라서 이산가족 상봉 문제뿐 아니라 국군포로와 납북자 귀환, 남한 측의 대북 구호물자 전달 등이 폭넓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합의의 의미를 반감시키는 장애물도 없는 것이 아니어서 장래를 무턱대고 낙관만하기는 조심스럽다. 면회소 설치와 국군포로 문제다.

면회소는 9월 비전향 장기수 송환 직후 적십자회담에서 설치·확정키로 명문화됐지만 북한 측이 다른 난관을 조성할지 알 수 없다. 우리 측은 북한이 후속 회담을 비전향장기수 송환 이후로 미룬 배경이 ‘일단 장기수를 받고 보자’고 판단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국군포로 귀환도 우리 측은 ‘조용한 대화’를 통해 해결한다는 입장이지만 북한 측의 호응여부는 미지수다.

북한 측이 조선일보 기자의 입북을 거부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국내 언론의 취재활동을 제한하려 하는 움직임도 남북간의 체제 인정이라는 관점에서 조속히 원칙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최병묵기자 bmcho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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