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은 「앞으로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되 무리하게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것은 불가피한 선택일 뿐더러 현실적으로도 당연한 방향이다. 현재의 남북관계는 북한의 고의적인 대화 기피로 인해 통로가 사실상 막힌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달 중순 모처럼 금강산에서 6차 장관급 회담이 열렸으나 북한이 막판까지 남한의 「비상경계」를 트집잡는 바람에 4차 이산가족 상봉 등 초반의 합의사항은 없던 일이 되면서 다음 회담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회담 결렬 후 북한은 남측 수석대표를 연일 비난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무리하게 대북정책을 추진한다 해서 무엇이 이룩될 턱도 없다. 임기를 1년 정도밖에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 점에서 김 대통령이 『내가 다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며 「대북정책의 연속성」을 강조한 것은 현실적인 판단이다. 햇볕정책으로 불리는 현정부의 대북정책은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일으켰지만 『북을 껴안아야 한다』는 명제 자체는 70년대 이래 우리측의 일관되고도 전통적인 국책이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현 정부의 햇볕정책은 그 추진방법과 과정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나 남북간 긴장완화에 일정부분 보탬이 된 점도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 임기 말의 시점에서는, 그리고 북한의 대화기피 의사가 확실해진 지금의 상황에서는 김정일 답방 등 새로운 사업을 억지로 추진하기보다는 경의선 철도연결 사업, 금강산 육로관광 사업, 개성공단, 이산가족 상봉 제도화, 금강산 관광특구 등 이미 합의단계에 이른 5대 사업의 결실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도리밖에 없다. 북한의 태도로 볼 때 이것도 결코 쉽지 않을 전망이나 이런 것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진전시킨다면 이 정부의 대북정책은 그만큼의 의미를 찾을 것이며, 다음 정부의 대북정책은 새로운 단계에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김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그동안의 일부 대북정책 추진 방식으로 인해 초래된 국론분열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도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하겠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