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은 30일 두 차례 장관급회담에서 6·15 공동선언을 실천할 큰 틀을 만들어 나가는 ‘설계도’를 마련했다. 회담의 성격 때문인지 남북한이 크게 견해를 달리한 부분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한은 기조연설에서도 구체적인 제안보다는 공동선언 실천의지를 다짐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특히 북한 측은 기본발언의 상당부분을 공동선언 실천 필요성에 할애했다. 따라서 남·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밑그림을 그리고 장관급 회담을 계속하면서 부문별 회담 등 구체적인 협력방안을 논의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장관급회담·연락사무소

장관급 회담의 정례화는 일단 공동선언 실천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북한 측이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 보다는 회담의 지속에 더욱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공동선언의 실천을 통해 실리를 취할 부분이 많다는 판단을 한 때문인 것 같다고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분석했다.

장관급 회담은 향후 양측에서 제기하는 문제를 총괄 조정하는 사령탑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공동선언은 통일방안을 비롯해 경제, 군사, 사회·문화, 체육 등 다방면적인 교류에 합의했다. 이는 회담이 1회성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점을 북한이 인식하고 있는 이유가 되고 있다.

남북의 어느 한쪽에서 제기하는 문제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풀어갈 것이냐를 장관급 회담에서 교통정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연락사무소 정상화는 남북이 적십자사 직통전화와 별도로 당국간 연락 채널을 복원한 것을 의미한다.

연락사무소는 1992년 5월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합의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에 설치한 것으로, 당국간 연락과 실무협의를 맡은 창구다. 그러나 이는 1996년 11월 북측의 일방적 철수로 그 기능이 정지됐다. 이를 복원키로 한 것은 남북이 기본합의서 체제로의 이행에 한 걸음 다가선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 화해주간 선포

남·북한이 각각 광복절이 들어있는 8월13일부터 19일까지를 ‘화해주간’으로 선포, 6·15 공동선언 지지행사를 갖기로 한 것은 양측의 공동선언 이행의지를 다짐하고 남북화해를 대내외에 보여주자는 취지다. 6·15 공동선언의 골자는 남북한간 분열과 대결의 시대를 끝내고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의 시대로 나가자는 것이며, 이를 재확인하는 행사를 갖자는 것이다.

이번 8·15엔 남북 이산가족들의 서울·평양 교환방문이 있고 이에 앞서 남한 언론사 사장단이 북한을 방문한다. 이어 8·15를 전후해 북한 교향악단의 서울공연이 예정돼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북한은 지난 1990년부터 북한 측이 주도해온 범민족대회에 남측 인사들이 참여하는 문제로 연례행사처럼 갈등을 빚어왔다. 이번 화해주간은 이같은 분위기를 어느 정도 감안해 남·북한이 따로 행사를 갖기로 했지만, 앞으로 공동행사로 까지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 경제협력

우리 측이 그동안 공동선언의 후속조치로 거론했던 남북 경제협력의 구체적 방안들은 많다. 경의·경원선 철도 연결, 임진강 공동 수해방지 대책 강구, 공단 조성, 전력 지원 등이 그것이다. 남북한은 쉬운 일부터 점차로 경제협력을 추진해나간다는 원칙에는 합의했다. 공동선언에 표현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의 후속조치인 셈이다.

그러나 경제협력에는 이중과세 방지협정, 투자보장협정 체결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우리 측은 이날 회담에서 이를 촉구했고, 북한 측도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협력사업을 언제, 어떻게 추진하느냐는 문제는 경제공동위를 열어 협의해나가야 할 대목이다. 양측은 심야까지 이 문제를 절충했다. 31일 발표될 합의문에 이 문제가 어떻게 표현되느냐가 주목된다.

◈ 남은 과제

1차 장관급회담에선 우리 측은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경제, 사회문화 등 부문별 추진협의체 구성도 거론했으나, 합의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투자보장협정 등 경협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과 긴장완화의 조치인 군사직통전화 설치도 합의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북한으로선 첫 회담에 너무 많은 부담을 떠 안는 것을 우려했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우리 측의 한 회담 관계자는 “북측은 공동선언과 관련된 합의사항은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 한꺼번에 많은 것을 합의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우리 측의 보따리가 너무 컸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남은 과제들은 앞으로 남북한간 신뢰가 쌓이고 공동선언 이행 의지가 실질적으로 확인될 경우, 이러한 문제들도 하나씩 풀려나갈 것이라는 게 우리 측의 전망이다. 남은 과제들이 실현될 것인지 여부는 일단 평양에서 열릴 2차 장관급회담에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최병묵기자 bmchoi@chosun.com

/김인구기자 ginko@chosun.com

향후 남북대화 채널 예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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