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은 어느 때보다 주변 정세가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급변하는 조류를 타고 있다. 6·25전쟁 50주년을 맞은 6월에 평양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 후 5대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자 많은 국민이 환호하면서도 일부에서는 사고(사고)의 혼돈으로 갈등을 빚기도 한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이 귀국성명에서 ‘이제 전쟁은 없다’고 선언하는가 하면, 정치권 일각에선 ‘주적(주적) 개념의 변경’ 등을 논의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런 상황 전개 과정에서 우리는 환호나 혼돈에 빠지기보다는 사태의 진전에 냉철하게 대비하는 슬기를 가져야 한다.

평양에서의 극적인 환대에 도취하여 지금까지 간직했던 공산주의에 대한 인식과 북한 인민군에 대한 주적 개념을 훨훨 털어버리고 갈채를 보내기에는 아직 너무나 많은 앙금이 남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그 이유는 6·25전쟁이 민족사상 가장 처참했던 동족상잔으로서 우리들에게 아물지 않는 많은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다.

또한 전쟁 발발 직전에 취했던 북한당국의 연이은 위장평화공세와 기만술책을 상기한다면 이번 선언의 신뢰성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의구심이 느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물론 이번 평양에서의 평화를 전제로 한 쌍방간의 화해와 협력의 시발이 55년간 적대관계에서 빚어진 원한을 풀 첫 단추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민감한 시국에서 우리 국민이 염려하는 것은 아직도 휴전선 북단에는 100만명이 넘는 인민군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호 신뢰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군축 문제도 진행되리라 믿지만, 우선 이런 염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는 빈틈없는 임전태세와 함께 확고한 군 기강으로 어떤 사태에도 대응할 수 있다는 믿음이 서야 한다. 정치적 사회적 변화에 구애받지 않는 의연한 국군의 존재를 우리들은 바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요즘 우리 군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건 사고들은 우리 국민들을 실망케 하고 있다. 공군의 한 장교가 10여억원의 공금을 훔쳐 미국으로 달아났는가 하면, 현직 사단장 직위의 장성이 부하장교의 부인을 성추행하는 충격적인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런 일련의 사건 사고들이 현재의 시국과 관련해 방심한 나머지 군인정신의 해이나 군기의 문란에서 왔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얼마전 ‘나이키 유도탄 오발사건’ 등 곳곳에서 드러난 군 기강해이가 아직도 고쳐지지 않고 있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희한한 ‘파렴치 범죄’까지 속속 드러나고 있으니 국민들은 누구를 믿고,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는가.

60만 대군이기에 여러 가지 사건 사고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사건 사고의 성격에서 우리는 참담한 심정으로 오늘의 국군을 바라본다. 군은 정치인들의 말장난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오로지 주어진 임무에만 충실해야 한다.

시국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흘러간다 해도 군은 곁눈질하지 말고 자기 직책에만 몰두하며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그것이 숭고한 호국정신으로 돌아가는 첩경이다. 우리가 주적으로 정해온 북한과 화해와 협력의 새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고 해서 군의 기강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는 일이 있다면 안 된다.

우리는 독일 통일 과정에서 좋은 교훈을 찾을 수 있다. 그 혼돈의 통일과정에서 의연한 자세의 서독군과 흔들리는 동독군을 보았다. 주변 상황이 아무리 바뀌어도 한 점 흔들림 없던 서독군이 있었기에 독일 통일은 가능했던 것이다. 어떤 정세에도 까딱하지 않는 의연한 우리 국군의 자세야말로 통일역군으로서의 빛나는 과업을 완수하는 데 필수적인 일일 것이다.

/ 박경석 한국군사평론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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