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그리스) 아테네에서 민박집을 정해놓고 식사를 자급코자 인근 빵집을 찾아 들어갔다. 과자상자를 산더미처럼 안아들고 나오던 주인이 보고 한국사람 아니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안고 있던 상자더미를 던져버리고 달려와 끌어안고 ‘볼대기’를 하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희랍말을 연거푸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오, 나의 형제여’ ‘너의 나라를 사랑한다’는 희랍말이었다 한다. 알고보니 한국전쟁 때 참전했던 희랍병사로 이산했던 형제라도 만난 듯 반가워한 것이다. 이 빵집 참전 노병은 아테네에 머무는 닷새 동안 아침마다 따끈한 빵을 민박집에 공짜로 배달해주기까지 했다.

휴스턴 와이드오크 숲 속에 텍사스 한국전 참전 용사의 집이 있다. 90대의 고령 노병까지 80여명이 군복차림으로 이 집에서 만나 한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상의한다. 걸프전쟁이 일어나자 이 빨간 지붕의 하얀 집에 모인 노병들은 한국에도 요격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공급해야 한다고 합의, 푼돈을 거두어 여비를 만들어 대표 3명이 미 상원을 찾아가 동의안을 상정케 했고, 백악관을 찾아가 진정했다. 한국전쟁 때 참전했던 항공모함 오리카스키호를 폐선하여 일본 요코하마의 위락시설로 개조한다는 보도를 접하자 성난 노병들이 다시 이 하얀 집에 모였다. 그 항공모함에서 부상한 무전사가 주동이 되어 ‘우리의 피가 묻은 배다. 그 항공모함은 한국군에 양도돼야 한다’고 결의하고 다시 푼돈을 모아 진정사절을 보냈다.

이처럼 한국을 한국사람 이상으로 위하려는 사심 없는 애정은 나라를 초월한 참전용사들의 공감대다. 지금 전쟁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전쟁 50주년 기념 ‘아! 6·25전’에는 지난 2년 동안 미국 일본 북한 중국 러시아 등지에서 수집한 새 자료 2만여점이 전시되어 감명을 더하고 있는데 특히 참전용사들을 새삼스럽게 인식케 해준다. 기념관에는 참전 전몰장병의 명단을 새긴 영령판벽이 있는데 그 앞에 한 노병이 한 명단을 손가락으로 거듭 쓸면서 흐느끼고 있음을 보았는데 아마 같이 싸우던 전우가 아니면 부하의 명단일 것이다. 정부에서는 참전 미군에게 종군기념 기장을 보내기로 했다던데 잘한 일이요, 생사를 챙겨 살아 있는 노병에게는 생일에 축의를, 작고하면 조의 베푸는 일에 소홀하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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