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인사청문회는 첫사랑과 비슷하다. 서툴게 진행되고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런데 헌정사상 처음 실시된 이번 이한동 국무총리서리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첫사랑과 다른 점이 있다. 첫사랑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좋은 추억을 남기며 미화되지만, 이번 인사청문회는 의회민주주의를 성숙시킬 수 있는 호기를 놓치게 했다고 두고두고 씁쓸함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우려된다.

성숙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국회에 대한 불신감을 가중시키고 국회 위상을 실추시켰다고 오랫동안 비난받지 않을까?

이러한 우려는 남·북한 관계의 급진전에 따라 대통령의 국정 주도권이 한층 강화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특히 심각해진다. 자칫 대통령과 국회 간의 권력불균형을 심화하는 계기로 남·북한 정상회담뿐만 아니라 이번의 총리후보자 인사청문회도 앞으로 계속 거론될 것 같다는 걱정이 든다.

이한동 총리서리 개인에 대한 실망은 논외로 하자. 5공 이후의 정치행적과 말바꾸기로 인해 그에 대한 실망감은 이미 한껏 커져 있었다. 청문회에서 그가 한 각종 언사는 그러한 실망감을 확인시켜 주었을 뿐이다.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하는 것은 개인에 대한 실망보다는 처음으로 시도된 인사청문회 자체에 대한 실망이다. 과연 의원들과 청문 대상인 후보자 간에 진지하고 솔직한 대화가 오고갔는지, 의원들은 공정한 판단을 내릴 만큼의 자세를 보였는지, 국민은 향후 국정과 관련된 중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지, 청문회가 사회 불만을 어느 정도라도 흡수했는지 등 의도된 청문회 기능과 관련하여 부정적 회의가 든다.

‘부실청문회’가 될 수밖에 없게 한 원인은 여럿이다. 우선 제도·구조적 원인을 들 수 있다. 불과 10일의 준비기간과 2일간의 청문회로는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 수 없다. 국회가 독립적 조사능력을 갖추거나 행정부에 자료 제출을 강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장치도 없었다. 상임위가 아니라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정치경험이 일천하고 정책전문성이 과히 높지 않은 초선 의원들 위주로 구성한 점도 지적할 수 있다.

미국의회 인사청문회를 모범으로 삼는다면서 이러한 제도·구조적 문제를 고치지 못하는 이유는 의원들의 과도한 정파성 때문이다. 국회 내 정당들 간의 대립 때문에 효과적 인사청문을 위한 제도·구조적 개선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흠집내는 데만 열을 올리는 당이 있어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정파적 이유로 말미암아 의원들이 청문회에 여러 제약을 가하고 봐주기식, 방어식, 심지어는 아부식으로 청문회를 진행한다면 더욱 곤란하다.

총리 후보자의 좌석 바로 뒤에서 일부 의원이 그의 답변에 도움을 주고자 보좌관처럼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눈을 의심케 한다. 인사청문회는 여와 야의 대결이 아니라 행정부 대(대) 국회의 구도 속에서 권력균형이 이루어지는 장(장)이라는 점을 의원들 스스로가 망각한 모양이다.

이처럼 정파성 때문에 자기비하의 모습을 노출하는 의원들이 있는 한, 청문회가 효과를 볼 수 있겠는가?

이번 인사청문회가 이한동 총리서리를 잘 신문하지 못했다는 것은 비교적 작은 문제다. 더 큰 문제는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감이 더욱 고조되었다는 점이다.

16대 국회의 출범 초부터 국민의 불신감과 냉소주의가 커진다면 향후 국회·대통령 간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뻔하다.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은 대북정책을 혼자 이끌면서 정국의 주도권을 한껏 당기고 있는 판국인데 말이다.

총리 청문회는 어차피 끝났고 본회의 표결이 남았다. 여기서나마 의원들은 소신있는 행동으로 의회민주주의의 발판을 구축해야 한다.

/ 임 성 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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