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관리자의 모범사례 따라하기

정춘실운동은 북한이 상업유통분야 종사자들의 충성심과 노력혁신을 유도하기 위해 펼치고 있는 대중적 노력경쟁운동이다. 북한이 79년 10월부터 사회 곳곳에서 묵묵히 맡은 바 업무에 충실한 사람들을 찾아내 상찬하고 그들의 모범사례를 널리 알려 주민들로 하여금 따라 배우게 했던 이른바 "숨은영웅 따라배우기운동"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이 운동은 1991년 김정일이 상업부문에서 당과 수령, 인민에 대한 충성심과 헌신적 복무정신으로 모범을 보였다는 자강도 전천군 상업관리소(상품공급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 소장 정춘실(62. 여)의 경험과 사례를 내세워 이 분야 종사자들에게 그를 적극 따라 배우도록 지시하면서 시작됐다. 정춘실은 30여 년간 전천군 상업관리소 소장으로 일하면서 "우리 가정수첩"이라는 가구별 장부를 만들어 주민들의 일상사를 꼼꼼히 챙기는가 하면 부족한 생필품 공급을 위해 직접 인분지게를 지고 야산을 개간해 식료품을 마련하는 열성을 보였던 것으로 소개됐다.

특히 "우리 가정수첩"은 김일성으로부터 "공산주의상업의 싹이며, 아주 좋은 사회주의 상품공급 방법"이라는 칭찬을 듣기도 했는데 이 수첩에는 주민들의 복장 치수와 신발 문수, 결혼·회갑 날짜, 집안 대소사 등이 적혀 있어 그때그때 필요한 상품을 공급해줄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은 정춘실운동의 확산을 위해 "정춘실운동 모범단위" 칭호를 제정해 우수 기관, 공장·기업소에 수여하는 한편 94년 12월에는 평양에서 상업부문 종사자 3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춘실운동 선구자대회"를 개최해 이 운동의 대중화를 촉구했다. 또 당기관지 노동신문을 비롯한 선전매체들은 "혁명전사가 어떻게 살며 투쟁해야 하는가를 보여준 빛나는 귀감"이라며 정춘실의 모범적인 근무자세와 희생정신을 추켜세웠으며, 그를 주제로 "효녀"라는 예술영화를 제작해 배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정춘실운동"의 실존 주인공인 정춘실은 제6기(77.12)부터 10기(현재)까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연임하고 북한 최고의 훈장인 "김일성훈장"과 "노력영웅" 칭호(2차례)를 수상했으며, 김정일로부터 "친필서한"을 받는 등 유명인사로 부상했다.

북한이 90년대 초 정춘실운동을 벌이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말부터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상품공급이 여의치 못함에 따라 각 지역단위로 상업부문 종사자들의 분발을 유도해 부족한 생필품을 자체 해결토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데다 정춘실 소장이 끊임없이 부정축재와 비리 의혹에 휘말리면서 운동의 의미도 상당히 퇴색했다고 탈북인들은 전하고 있다.

/김광인기자 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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