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측은 상대방(조선일보)이 언론사란 특성 때문에 문제점이 발견됐을 때 대표기자 교체를 제시했는데, 해당 언론사에서 끝까지 고집했다는 상황이 있었던 것 같다. ”

언론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의 김순규(김순규) 차관은 27일 이런 말을 했다. 북측의 조선일보 기자 입북 거부란 예기치 않은 ‘사건’에 대해 국회 문광위에 나와 한 발언이다. 마치 ‘조선일보가 방북 취재를 포기만 했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었을텐데…’ 하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는 시사평론가가 아니라 핵심관료다. 그의 말이 정부 입장이라면, 앞으로 방북 취재는 북 당국이 ‘허가한’ 언론사만 가능해진다. 이런 식이라면 남한 언론은 이제 김대중 대통령은 비판해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비판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올 것이 뻔하다.

더구나 조선일보 김인구 기자는 단순히 개별언론사 차원서 방북한 게 아니다. 그는 통일부가 북한측과 합의한 대로 한국 신문사 취재기자들 중 추첨에 의해 뽑힌 대표기자(풀 기자)다.

지난 평양 정상회담 때 북측이 조선일보와 KBS 기자 방북취재를 거부하자, 김대중 대통령은 남측 사회에서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인 언론 자유를 침해당할 수는 없다는 일관된 원칙을 고수했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정작 실무자에겐 이 뜻이 전해지지 않은 것일까.

72년 동서독 정상회담이 이뤄진 후 동독도 서독 언론을 길들이려 한 것 같다. 74년 상주 특파원 교류에서 보수적인 방송사 ARD에 동독이 허가를 내주지 않자, 경쟁사인 ZDF는 ARD 허가가 나올 때까지 동독에 입국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들은 그렇게 원칙이 있었다. 취재도 통일의 중요한 과정이자 행위이기 때문이다.

정상 회담을 계기로 남과 북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상호 교류의 긴 여정에 함께 들어섰다. 정부 당국자도 이젠 북측에 당당히 우리가 그들과 다름을 주장하고 요구하는 태도를 보여줘야 하지 않는가.

/진성호 문화부기자 shj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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