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키신저(Kissinger) 전 미국 국무장관은 11일 북한 핵 문제와 관련, “유엔 안보리 국가들이 북핵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지난 몇 년간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계속 진행되고 있고 용납되고 있다”며 “북핵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핵무기가 확산되면 세계의 대 참극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이날 아산정책연구원(이사장 한승주)이 주최한 ‘북핵문제와 동북아시아’ 강연에서 “북한이 자국민을 굶겨 죽이면서까지 핵을 보유한다면 다른 국가들도 핵무기를 보유할 유혹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해 미국이 두려워할 건 많지 않다. 미국은 충분히 대응할 무기 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북한의 핵무기가 미사일을 통해 서울에 사용돼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몇 시간 만에 살상당했다는 소식을 듣는 걸 방지해야 한다”고 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현재 북한은 상당히 많은 자원을 핵무기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북한은 유일한 성과가 핵무기 개발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인데 이는 전 세계 국가에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 “주요 몇몇 국가가 핵을 보유하면 핵 능력을 계산할 수 있지만, 핵이 확산되면 이런 계산이 불가능하고 사용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했다. 북한의 핵 보유가 인정되면, 북한처럼 통제되지 않은 국가들이 필사적으로 핵에 매달려 핵확산을 막지 못하는 상황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는 현재 진행 중인 6자 회담을 통한 ‘제재와 대화’를 지지하면서도, 미국과 북한의 양자 회담엔 반대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북핵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북핵에 영향을 받는 모든 국가의 문제”라며 “협상(6자회담)은 진행해야 하지만 구체적 결론이 있어야 한다.

협상 자체가 결론을 이끌어내진 못한다”고 말했다. 북한에 대해선 “굉장히 이상한 체제가 이상하게 운영되는 것이 지금의 북한”이라면서, “김정일 위원장이 죽게 되면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지금 확정된 승계자가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미·중(美中) 관계에 대해 키신저 전 장관은 “미중 간의 군사분쟁은 상상하기 어려운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그럴 때는 누가 승자인지 상상하는 게 의미가 없다”면서, “세계 평화를 위해 미국과 중국은 서로를 이해하고 적응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으로 묶인 세계의 변화에 대해 그는 “책으로 공부하던 때와 전혀 다른 세계가 열렸지만, 개념적인 사고가 어려워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언급했다. 정우상 기자 imagin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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