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이후 한국으로 들어온 탈북자는 1800명 정도. 사망자나 이민자를 뺀 1600여명이 한국에 정착해 살고 있다. 이들 중 700명 이상이 작년과 올해 입국했다. 지금도 수많은 탈북자들이 제3국에서 한국행을 고대하고 있다. 바늘구멍을 뚫고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들은 운 좋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의 정착도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만만치 않은 과제다. 8년째 살고 있는 사람에서 1년 남짓 살아본 사람까지 5인의 탈북자들에게 한국정착 경험을 듣는다.



말투 따라하지 말란 말이야
=학원 선생이 학생들 앞에서 이래요. 『텔레비전에서 전철우가 그러는데 옥상을 하늘마당이라고 한다면서? 삐삐를 주머니종이라고 한다면서?』 “북한에서는 그냥 옥상이라고 하는데요. 주머니종은 본 적도 없어요.” 그렇게 쏘아 줘요. “쟤 북한애”라는 말이 딱 듣기 싫어요. 그래서 아예 연변이나 강원도에서 왔다고 해요.

=말투 따라 하는 건 정말 기분 나빠요. 번번이 그러다가 나한테 얻어터진 녀석도 있어요. 북한에서 진짜 ‘합네다’ ‘했습네다’ 하는 사람 없잖아요. 과장이 너무 심해요.

=호기심 때문에 따라하는 경우는 그래도 괜찮아요. 악의적으로 그러는 사람들이 있다니까요. 체육대회 할 때 『북한에는 이런 공 없죠?』라든가, 고기 먹을 때 『북한에서는 이런 고기 못 먹어 봤죠』 하면 정말 기분 팍 상합니다.

몇 년은 허공에 둥둥
=처음 1년 동안은 사람들이 관심도 가져주고 호기심 때문에 이것저것 물어보고 해서 뭐가 된 기분입니다. 누구나 만나면 잘 해 주잖아요. 나는 처음에 귀순자라는 이미지를 세웠어요. 1년 지나니까 북에서 왔다는 게 제일 불리하다는 걸 알겠더라고. 노숙자 다음이 탈북자지. 한국사회에서는 최하층민이야. 이 때 정신 안 차리면 북한말로 「행방없는(앞뒤 못 가리는)」 사람 되는 거죠.

=직장에서 2차, 3차 가잖아요. 정신이 드니까 거기는 못 가겠더라고요. 딱 1차까지만 하고 집에 가요. 끝까지 어울리기가 어려워요. 탈북자니까 더 열심히 하자고 생각해서 업무는 빨리 따라갔어요. 바깥 사람 대하는 것은 금방 쉬워지는데 오히려 직장 안에 있는 동료들 대하기가 어려워요. 내 약점까지 속속들이 아니까요.

=3년까지는 아무 것도 몰라요. 5년은 돼야 정착했다고 할 수 있지. 형체가 갖춰진다고 할까. 그전에는 사회·역사·정치를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떠들어요. 한 5년 정도 지나니까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더라고요. 새로 온 탈북자들 만나면 반갑죠. 내가 저럴 때 남한사람들은 뭐라고 했을까 싶기도 하고. 내가 남한사람 다 된 거죠.

부부생활 재미는 그래도 남한

=탈북자들 모여 있는 데는 아직 가고 싶지 않아요. 모이면 불평불만이 많아요. 누가 뭘 안 해주네, 정부가 어떻네 하면서. 하나원(정부에서 운영하는 탈북자 정착교육기관) 출신도 1기 다르고 2기 달라요.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이 나라에서 이 정도 걷어줄 때는 고마운 줄도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처음 한국 오면 내 세상 만난 기분이죠. 그 기분에 퍼마시다 세월 다 가. 나도 처음 1~2년은 술·여자에 ‘쩌려’ 살았어요. 강연이다 뭐다 좇아다니다 보면 허공에 둥둥 떠다녀요. 그렇게 번 돈은 다 날아가. 싸그리. 나중에 여자 만나서 살다 보니까 현실이 뭔지 알겠습디다. 안 해 본 게 없어요. 술집·출판사·무역... 귀순자들은 사업하지 말라고 합니다. 남들 10발 뛸 때 100발 뛰어도 시원찮아. 사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요.

=역시 남자는 장가를 가야 정착이 돼요. 남한여자라면 눈길도 안 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인연이 되다 보니 꼭 북한 농촌여자 같은 사람을 만났어요. 한밤중에 친구가 찾아와도 암말 안 해요. 대신 나도 잘 하지. 겨울김장은 내가 다 한다니까. 구들까지 닦아줘요.

여편네 데려온 건 일생의 실수

=봉급타서 남는 돈이 진짜 돈이더라고요. 처음에 60만원 받고 냉면공장에서 일할 때는 참 서럽더군요. 베트남 사람은 70만원 주더라고요. 중국동포보다 못하고, 외국사람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니 내가 왜 여기 왔나 몇 번이고 생각하게 돼요.

=그래도 여자는 돈벌기가 괜찮은 편이에요. 처음에는 내가 그래도 북한에서 대학까지 나왔는데 싶어서 자존심이 상했는데, 그것만 꺾으면 일자리가 많아요. 한 달에 150만원 벌기는 어렵지 않아요. 남자들은 안 그래요. 남한사람도 40대에 실직하면 어렵잖아요.

=북한남자들은 남성우월주의가 심하잖아요. 남한여자들이 우리 집 와 보고 남편 행동에 충격을 받아요. 그래서 내가 다른 집에 건너가 있으면 남편이 아파트가 떠나가라고 내 이름을 불러대요. 그거 고치느라고 무지 싸웠어요. “여편네 남한에 데려온 게 일생의 실수”라고 그래요.

=북한에서는 일이다 뭐다 떨어져 살아서 부부간의 재미라는 건 없었어요. 잃어버린 세월을 보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는 안사람한테 잘 해 주려고 해요.

모계사회가 다시 온 줄 알았어요

=여기 와서 키스라는 게 이런 거구나 처음 알았어요. 핑 돌더라고요. 여기 남자들은 윤락녀한테서 총각딱지를 뗀다고 하더라고요. 대한민국 여자들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어요. 탈북자들도 여기 오면 윤락촌부터 가보잖아요. 저렇게 예쁜 애들이 왜 저기 있을까 정말 신기하더라고요. 우리는 이런 게 자본주의구나, 한국사회구나 생각하면서 남한을 배우는 거죠.

=요새 북한도 예전 같지 않아요. 연애문화는 더 발달되어 있다니까요. 처녀는 탁아소에나 있다고 그러잖아요. 군인들이나 석기(石器) 소리 듣죠. 여자들이 억세졌어요. 남자들보고 집 지키는 멍멍이, 낮전등이라고 그래요. 식량도 여자가 구해오고 돈도 벌어오니까요.

=북한에 있는 애들 생각해서 열심히 살고 있어요. 집사람이 데려온 딸애하고 북한에 있는 두 애들까지 세 몫을 나눠 저축을 해요. 둘이 벌면 250만원쯤 돼요. 애 학원 보내고 아파트 임대료 내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려면 최소한 150만원이 있어야 되겠더라고요. 나머지를 저축하자니 언제 집을 사겠어요. 부업도 해야죠. 나중에 북에 있는 애들 만나면 떳떳하고 싶어요.

주식투자로 망했을 땐 수용소 가는 기분

=두부공장에서 피멍들도록 일해 보고, 고생은 북한에서보다 더 많이 했어요. 아르바이트의 연속이죠. 돈 벌어서 200만원씩 저축했어요. 애 학교 보내고 살림 살면서 60만원으로 생활했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북한에서 배 안 고팠어요. 여기와서 김치쪽에 밥 먹는다는 게 뭔지 알았어요. 그렇게 해서 33평짜리 신도시 아파트분양 받았다가 프리미엄 받고 되팔았거든요. 그 돈을 IMF 직후에 주식도 아니고 선물 옵션으로 날려 버리고 말았어요. 정말 죽고 싶었어요.

=나도 주식하다 날려보니까 북에서 수용소 갈 때랑 같은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북에서 온 사람들은 대한민국 와서 성공을 너무 크게 기대하죠. 일확천금을 꿈꾼다고 할까. 마음을 비우는 데 3~4년은 걸려요. 자본주의는 냉정한 사회거든요.

=강연이다 뭐다 초청받아 다니다 보면 사기꾼도 너무 많아요. 무슨 사이비 자선단체에서 귀순자 나온답시고 기자 불러놓고 선전하는 거죠. 나중에 단돈 만원 줘요. 사람 바보 만드는 거지요.

우린 언제 빨갱이 아니었나

=이제 북한 가서 살라고 하면 못 살아요. 하고 싶은 말 마음대로 못 하잖아요. 여기서는 정치 얘기하면서 스트레스 풀고 살아요.

=자꾸 정치 얘기는 하지 말라는데 우리가 ‘정치의 나라’(북한)에서 왔잖아요. 관심이 많다고요. 여기는 수 틀리면 데모하면 되잖아요. 그건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북한을 너무 모르는 사람들이 민주화를 한 것 같아. 우리는 언제 세계혁명을 위해 인민을 위한 군대에서 일 안 했나. 빨갱이가 뭔지 진짜 너무 몰라. 야당도 물대포야. 진짜 호상비판 한번 받아봐야 된다니까.

=“내가 김정일 위원장 팬인데” 어쩌구 하면서 다가오는 사람들 있어요. 스트레스 받아 죽을 것 같아요. (김정일) 선글라스가 멋있느니 어쩌니 하면서.

애들은 오자마자 컴퓨터 귀신

=우리보고 여기 사람들은 다 무슨 죄를 지어서 온 게 아닌가 의심해요. 그런 사람도 물론 있겠지. 그런데 거기는 장사하는 것도 죄가 되는 사회야. 여기 사람들은 그런 거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평생 누명쓰고 사는 거예요.

=남한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는데 직장이나 학교에서는 여기가 더 권위적인 것 같아요. 우리는 군대에서도 이렇게는 안 해요. 여단참모장한테도 할 말은 다 하거든요. 정치적으로 문제될 내용만 아니면 뭐든 이야기해요. 여기는 선배 후배도 하늘과 땅이라니까요. 직장에서도 상사한테 꼼짝 못하고, 그런 건 참 힘들었어요. 윗사람이라고 해서 잘못 하는 것도 그냥 봐 넘겨야 되잖아요.

=실향민들도 여기 와서 고생 많이 했지만 결국 이북5도청 지어놓고, 서울 한복판에 교회 세워놓고 했잖아요. 우리가 아직 여유가 없어서 그렇지 탈북자들도 나중엔 달라질 겁니다.

=애들은 정말 빨라요. 같은 날 같이 나와도 애들은 금방 컴퓨터 귀신이 되더라고요. 말도 금방이고요. “이런 게임 모르지?” “채팅은 할 줄 알아?” 나보다 뒤에 온 동생애들이 이렇게 놀린다니까요. 애들은 남한 북한이 없는 것 같아요.
/진행=강철환기자 nkch@chosun.com
/김미영기자 miyo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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