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5일 금강산.개성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을 다음 달 8일 갖자고 북에 수정 제의했다.

2008년 중단된 두 관광 사업과 관련한 남북한 사이의 논의가 곧 시작되는 것이다.

금강산 관광은 2008년 7월11일 관광객 고(故) 박왕자씨가 북한군 초병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직후 우리 당국의 결정에 의해 중단됐다.

또 개성 관광의 경우 같은 해 12월1일 북한이 남북관계 1단계 차단조치를 시행하면서 중단을 결정했다.

전체적인 상황을 봤을 때 일단 논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양측의 생각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은 현금 수입원의 복구 차원에서 관광 재개를 절실히 원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북한 핵실험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국면속에 현금 제공 사업을 재개하는데 신중한 입장이다.
첫번째 관문은 정부가 제시한 관광 재개의 3대 조건인 박왕자씨 사건 진상규명, 재발방지, 관광객 신변안전 보장의 제도화 등이다.

박왕자씨 사건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는 그간 북한 당국이 현대그룹과의 협의 과정에서 몇차례 약속을 한 만큼 양측이 큰 어려움 없이 합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존 남북간 출입.체류 관련 합의를 변경해야 하는 ‘신변안전 제도화’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정부 당국자들은 보고 있다.

정부는 박왕자씨 피격 사건은 물론 작년 137일간 외부인 접견조차 못한 채 북한에 억류됐던 개성공단 근로자 유성진씨의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국제수준의 신변안전 보장 장치를 요구할 방침이다. 이른바 글로벌 수준의 보호조치를 말한다.

북한이 관광 재개를 위해 우리 요구를 가급적 수용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그러나 기존 합의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남북간의 밀고 당기기가 불가피할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예상이다.

또 하나의 관건은 종전에 현금으로 제공했던 관광 대가의 지불 방식을 변경할지 여부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작년 11월 기자 간담회에서 “관광대가 지불방식 변경 문제는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가 가고 있는 상황과 걸려 있다”며 변경 요구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이날 통일부는 관광 대가 문제를 당장 의제로 삼지는 않을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나중에 관광이 재개되는 시점에 그 문제가 필요하면 검토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여운을 남겼다.

결국 ‘3대 조건’이 충족되더라도 관광을 재개하려는 시점에 북핵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관광 대가 지불 방식의 변경을 요구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은 셈이다.

북한은 공식 매체를 통해 대가지급 방식을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을 누차 천명한 바 있다. 따라서 정부가 관광 대가 변경 문제를 어느 시점에서든 거론할 경우 강력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정부가 이날 일정과 개최장소, 대화의 격을 각각 수정해서 제의하는 한편 북측 전통문 수신자를 김양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장으로 특정한 것은 중요한 시사점을 던졌다.

북한이 제안한 26~27일 대신 2월8일로 제의한 대목에서 새해 초부터 대대적인 대화 공세 속에 군사적 위협을 병행하고 있는 북한의 의도를 분석해가며 대화의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정부의 속내가 읽힌다.

이에 대해 천 대변인은 “남북관계 상황이 미묘하고 점검해야 될 사항도 많이 있기에 2월8일 정도에 협의하면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전통문 수신자 직책과 관련, 조선아태평화위원회(아태위) 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김양건 부장의 직책을 굳이 당 부장으로 명시한 것은 현대아산의 금강산 관광 사업 파트너인 아태위를 당국으로 간주할 수 있느냐에 대해 이견이 있음을 감안한 것으로 읽힌다.

여기에는 관광객 신변 안전 제도화 문제가 걸린 이번 회담을 명실상부한 당국 대 당국 회담으로 진행하려는 의지가 투영돼 있다고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다만 민.관의 경계에 있는 아태위 대신 명백히 ‘당국’으로 볼 수 있는 노동당 통일전선부 등의 인사와 회담하려는 우리 요구를 북한이 선선히 받아 들일지가 변수로 남아 있다. 만약 북한이 아태위가 개성.금강산 관광 사업의 당사자이자 책임있는 당국이라는 논리로 반발할 경우 ‘샅바싸움’이 길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북한이 실무접촉으로 제의한 것을 우리가 ‘실무회담’으로 격을 높여 수정제의한 대목 역시 우리 국민의 신변안전과 관련된 이번 대화의 중요성을 감안한 것으로 읽힌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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