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년 평양축전을 앞두고 건설된 평양 만경대구역 광복거리의 원통형 아파트.

멀리서 평양시내를 향해 서서히 카메라를 비추면 아파트단지의 위용이 눈부시다. 특히 광복거리에 늘어선 원통형, 와이(Y)자 형, 에스(S)자 형, 씨(C)자 형 등으로 된 고층아파트는 대체로 밋밋한 남한의 아파트 단지에 비해 기교가 돋보인다.

이런 패션감각의 아파트단지는 우선 북한의 주택정책에서 기인한다. 북한에서 주택은 원칙적으로 개인이 소유할 수 없다. 거주할 권리를 국가에서 배정받을 뿐이다. 실제로 들어가 사는 사람은 아파트의 형태나 실내공간에 대해 간섭할 수도 선택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북한의 아파트가 주거공간으로서의 기능은 부차적이고, 도시와 거리를 장식하는 조형물로서의 기능이 부각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도시 전체의 외관을 관리하고 계획하는 측면에서 "아파트"는 효과적으로 도시 미화에 참여하는 건축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평양의 아파트는 ‘거리’가 개발되면서 함께 건설된다. 평양의 거리는 사회주의적 도시계획 개념이 본격적으로 도입된1957년경 5개년 계획에 맞춰 개발되기 시작했다. 50년대 말에 청년거리와 보통문거리, 60년대 초 개선문거리, 중엽의 모란봉거리, 그리고 70년대에는 천리마거리, 서성거리가 개발된다. 70년대 중엽 낙원거리, 80년대초 창광거리와 문수거리, 중엽에는 경흥거리와 창광거리 2단계, 말에는 광복거리와 청춘거리, 90년대 들어 통일거리가 조성된다. 이 거리의 넓은 가로변에 들쭉날쭉 키가 다르고, 형상이 기기묘묘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것이다.

70년대 초 천리마거리에 들어선 15층 아파트는 아직 아파트건설이 미미했던 남한 당국을 바짝 긴장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주택산업연구원 장성수 박사에 따르면, "남북한이 모두 아파트 개발을 중시해 왔다. 주택난 해결 외에도 군사적 목적과 체제경쟁적 요인이 이런 경향을 부추겼다"고 한다. 아파트는 시가전(시가전)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군사용 콘크리트 구조물(토치카)용으로 쓸 수 있는가 하면, 사격이나 발포 진지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일단 주택에 비해 전파(全破) 가능성도 낮다.



◇ 통일거리 아파트 내부도. 한 층에 네 가구가 있다. 북한의 아파트는 외관이 우선시되면서 대부분 거실이 없고, 방에서 방으로 들어가는 식의 불편한 내부구조를 이루고 있다. 1=방, 2=부엌, 3=화장실, 4=전실






◇ 90년대 개발한 평양 낙랑구역 통일거리 아파트. 위 그림이 내부도면이다.


아파트 고층화는 80년 착공된 창광거리 30층 아파트에서 본격화됐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창광거리(당시 윤환선거리)에 들어서 있던 소련식 주택을 일소하면서 ‘반혁명종파투쟁’의 의미까지 담았다. 평양축전을 앞두고 개발된 광복거리에는 42층 초고층 아파트도 들어선다. 그러나 엘리베이트가 가동되지 않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실제 거주자에게 이 높이는 고통이다. "더, 더 높이"를 지향하는 경쟁적 심리는 남북한 체제경쟁에 도사리고 있던 어두운 일면을 반영한다.

이렇게 빨리 많은 세대의 아파트 건설이 가능했던 것은 조립식 공법으로 지어지기 때문이다. 이 공법은 구 소련과 같이 추운 지방에서 발달된 공법으로 시멘트 양생기간을 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돌격대의 아마추어 건설요원들이 농한기나 야간에 짬을 내 짓는 식이므로 시공에도 조립식이 유리하다.

장성수박사는 "남한은 중산층이 아파트를 선호하면서 자연스럽게 발달하는 경로를 걸었던 것에 반해, 북한은 외관 때문에 실내공간이 비효율적으로 짜여지고, 여러가지 불편한 점이 많아 성공적인 주거형태로 정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북한 아파트의 유일한 장점은 역시 "멀리서 보기에 아름답다"는 것인데, 여기서도 ‘쇼윈도’ 도시 평양의 모순이 확인돼 씁쓸하다./김미영기자miyo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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