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리굴로(프랑스 북한인권위원회 위원장, "사회사평론" 편집장)

지난 여름 파리에서는 "WFP가 무작정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를 놓고 격렬하게 논쟁을 벌이는 등 북한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9월 11일 미국 테러 이후로는 그런 질문이 쏙 들어갔다. 이곳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새로운 적이 훨씬 걱정스러운 것이다.

나 역시 광신과 테러로부터 프랑스를 지키는 투쟁에 동참할 것이지만 북한사람들이 처한 참상에 대한 관심 또한 놓칠 수 없다. 나는 유럽과 아시아가 좀더 끈끈히 연대하기 위해서라도 유럽인들이 북한문제 해결을 위해 애써야 한다고 고무해온 친구들의 노력을 잊을 수 없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가끔 이들에 관해, 또는 우리의 활동에 대해 전해주고 싶다.

지난해 벨기에 의회 의원 알렝 데스텍스씨는 공식 대표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다녀왔다. 그는 유럽인들이 어째서 북한이 최악의 나라가 됐는지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지난달 말 "전체주의 왕조로의 여행"이라는 책을 펴냈다. 벨기에 대표단은 북한에서 유럽으로 돌아온 그때 이미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동행한 TV팀은 이들 대표단이 학교를 방문하거나 선동가들의 연설을 듣고 어떤 순진한 반응을 보였는지 잘 알 수 있는 화면을 담아왔기 때문이다. TV를 본 사람들은 가뭄으로 피폐해 있는 북한 시골마을에서의 믿기지 않는 소풍장면을 잘 기억하고 있다. 마침내 온건 사회당과 기독교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북한의 안내원들과 함께 인터내셔널가(1864년 첫 결성된 사회주의 국제조직 "인터내셔널"의 노래.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를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TV는 결과적으로 북한의 우상화, 빈곤, 공공연한 거짓말, 기이한 선전술보다는 벨기에 대표단의 무능과 졸렬을 더 강조해 보도했던 셈이다.

알렝 데스텍스 의원의 책은 TV의 영향력을 능가하지는 못할 것이고, 때문에 벨기에 정치인들이 입은 심각한 타격은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 자신은 북한 여행 중에 이런 순진한 행동에 동참하지 않았으므로 그의 경험을 책으로 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이 목격한 그 모습에 얼마나 놀랐는지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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