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을 통하여 55년 동안 지속되어온 남북간의 극한적 대립구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바꾸고 있다는 점에서 현 정부는 칭찬받을 만한 쾌거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감격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속단할 입장에 있지 않다. 면밀한 계획과 충분한 준비, 그리고 국민적 합의 속에서 이 역사적 사업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그래서 앞으로의 남북관계가 국민들이 바라는 최소한의 수준으로라도 진전되지 않는다면 오늘의 이 국민적 기대는 허탈과 절망으로 바뀌게 될 것이고, 국민들의 실망감 또한 그만큼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안의 중요성이 이러하기 때문에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남북관계, 특히 경제협력사업에 관하여 우리 모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과제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첫째, 통일에 대한 국민적 기대와 수요를 적정수준으로 줄여야 한다. 이번의 정상회담을 통하여 온 국민은 통일이 마치 눈앞에라도 다가온 듯한 지나친 기대에 빠져 있다. 그러나 이 만남이 역설적으로는 한반도의 통일을 일정기간 지연시키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왜냐 하면 두 정상의 만남 자체가 남과 북의 체제를 상호 인정하는 것이며, 그것은 곧 분단상황을 양해하고 현 상황으로부터 어떠한 변화도 시도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상회담이 곧 통일로 이어질 것이라는 성급한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둘째, 지금까지 벌여온 대북사업에 대하여 ‘냉철한 머리’로 재평가하고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접근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사실 평양청년학생예술단이나 평양교예단의 서울 방문시 정상적인 개런티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출연료가 제공되었고, 현대의 금강산 사업도 사업성 위주의 투자는 아니지 않느냐는 비판여론이 있음을 부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십분 이해한다 하여도 국민정서와 여론의 지지가 없다면 어떠한 관계 진전 노력도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향후의 남북협력은 가능한 한 정경분리 원칙에 입각하여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협 제공의 대가로 성급하게 개방을 요구하거나 지나치게 정치적 양보를 강요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북한은 이 점을 가장 우려하고 있으며 체제 붕괴의 위험이 있는 어떠한 거래에도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남북경협은 경제논리에 따라 사업성 위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북관계의 특성상 철저한 경제논리의 적용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럴수록 경제문제는 경제논리로 풀어야 한다.

대북경협 사업에는 돈이 들어가게 마련이고, 돈 거래에 있어서 일방적 희생이란 있을 수 없다. 북한에 투자해서 돈버는 기업이 나오기 시작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투자는 봇물 터지듯 확대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의 가시적 성과에 급급하여 사업성에 관한 충분한 검토도 없이 기업들을 ‘줄 세우기’하는 등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 남북경협은 민간부문이 주도해야 하며 정부는 조정자의 역할로 만족해야 한다. 벌써부터 북한특수를 기대하는 기업이 많다.

그러나 이들에게 어떤 형태이든 특혜를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철저하게 사업성 위주로, 그리고 자신의 책임하에 북한 진출 여부를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대북 부실투자를 막을 수 있고 대북 사업도 장기적으로 꾸준하게 확대될 수 있다. 정부는 지나친 중복투자나 불필요한 경쟁을 억제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주면 된다. 이 같은 맥락에서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대북사업 추진 및 조정위원회’를 만들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앞으로의 남북관계, 특히 남북경협사업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온 국민의 지혜가 한데 모아져야 할 때이다.

/ 박 명 광 경희대 대외협력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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