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위당국자는 26일 금강산관광 대가로 종전처럼 현금을 북한에 주는 것에 대해 "그 문제(현금 지급)는 유엔 안보리 결의(대북 제재) 1874호가 가고 있는 상황과 조금 걸려 있다"고 했다. 금강산관광 현금 지불이 유엔 대북 제재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인정한 것으로 정부 당국자가 이를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도 이날 종전의 현금 지불 방식을 바꾸는 문제에 대해 "필요하다면 남북 간 관광 재개 논의가 이뤄질 때 검토해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문태영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금강산관광은 안보리 결의 1874호의 제재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정부의 1차 판단"이라고 밝혔다. 금강산관광 문제를 놓고 '고위당국자'와 외교부, 통일부와 외교부 간에 미묘한 입장 차이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는 '민족 공조' 차원에서 금강산관광에 우호적이었던 반면 외교부는 북한 제재를 위한 '국제 공조' 맥락에서 비판적일 때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 통일부와 외교부의 발언만 놓고 보면 두 부처의 입장이 바뀐 듯한 모습"(국책연구소 연구원)이란 관측이다. 북한은 최근 현인택 통일부 장관의 실명(實名)을 거론하며 "반통일적"이란 비난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양상에 대해 청와대 당국자는 "금강산관광 자체가 유엔 결의 위반이 아니라는 것은 통일부·외교부는 물론 한·미 간에도 공감대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금강산관광으로 거액의 달러가 북한으로 유입되는 부분은 "북한과 직접 협상해야 하는 통일부가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청와대 당국자)는 것이다. 북한은 작년 7월 관광객 피살 사건으로 관광이 중단될 때까지 금강산에서만 10년간 5억달러가 넘는 현찰을 벌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7월 외신 인터뷰에서 "지난 10년간의 막대한 대북 지원이 북한의 핵 무장에 이용됐다는 의혹이 있다"고 언급한 대목도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북한과의 협상을 앞둔 통일부로선 염두에 둬야 한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이날 북한이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협의를 공식 채널로 제의한다면 '수용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안보부서 당국자는 "대금 결제방식 변경을 관광 재개의 새 조건으로 내건 것은 아니다"라며 "2차 북핵 실험 후 채택된 안보리 결의가 대량살상무기(WMD) 개발과 관련된 북한의 자금줄을 차단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만큼, 달러를 직접 송금하는 금강산관광 대가 지불 방식에 투명성을 높일 필요는 있다"고 했다.

금강산관광 대금은 관광객 1인당 50~80달러씩 현대아산이 북측 아태평화위원회가 지정한 해외 계좌에 매월 송금하는 방식으로 결제가 이뤄진다. 우리 정부는 관광 대금이 김정일 '개인 주머니'에 들어가거나 군사적 용도로 쓰이는 것을 막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식량 등만 수입할 수 있는 계좌에 돈을 넣거나 현금 지급을 현물로 바꾸는 방안 등이 정부 주변에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지난 25일 아태평화위 대변인 담화에서 그동안 우리 언론 등에서 보도된 현물 지급 방식에 대해 "세계 그 어디에 관광객들이 관광료를 물건짝으로 지불하면서 관광하는 데가 있는가"라며 "해괴한 발상"이라고 밝혔다. 정부 소식통도 "민간사업자인 현대아산과 아태평화위 간의 계약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도 부자연스럽고, 쌀·석유 등 현물은 시세가 매일 바뀌기 때문에 현물 결제가 실제 가능한지 모르겠다"며 "자존심 강한 북한이 대금 결제방식 변경을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안용현 기자 ahny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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