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원
/세종대 교수·국제정치학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북한 인권문제는 워싱턴 정가에서 생소한 문제였다. 공화당계의 보수논객들조차도 그런 문제라면 미국이 관여하기보다는 한국정부가 ‘조용한 외교’로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북한 인권문제가 국제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9월 25일 제임스 릴리, 프레드 아이클, 스티븐 솔라즈 등 원로급 외교·인권 전문가들이 미국북한인권위원회(US Committee for Human Rights in North Korea)를 발족한 것도 그런 변화의 방증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집권 8년 동안 ‘북한이 곧 망할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서 전쟁억제를 위한 개입정책을 시행했다. 당연히 북한 인권문제는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공산독재체제와 김정일 정권의 본질에 의구심을 가지면서, 대북 식량·경제 지원의 전용, 탈북자들의 인권 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국 정계에서 북한 인권문제가 부각되기까지는 의회와 민간단체의 움직임이 주요했다. 특히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미국 방문을 주선해온 디펜스 포럼은 1997년 이후 탈북자들을 각종 강연과 청문회에 잇달아 초청했다. 정부 관계자와 시민들에게 북한 핵무기, 정치범 수용소에 관한 생생한 증언을 들려주고 북한에 대한 관심을 유도했다.

탈북자는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남북관계의 새로운 변수다. 우리 정부는 북한 인권을 본격적으로 거론할 경우 남북대화 단절 등 북한 정부의 반발을 우려하여 미온적 자세를 취해왔다. 중국이 무수한 탈북자들을 강제 송환시키고 사지로 내몰 때도 중국과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고만 했다. 햇볕정책의 포용력은 탈북자는 물론, 5만여명 이상의 6·25전쟁 포로 및 베트남전 포로, 400여명 이상의 납북자들 귀환에는 적용되지 않고, 단지 이산가족 상봉과 비전향 장기수 북송에만 선별적으로 적용되고 말았다.

흔히 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서독의 대동독 정책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지만, ‘인권’면에서 두 정책의 차이는 크다. 서독은 동독을 지원하면서 확고한 인권정책을 병행했다. 서독은 동독인권을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동시에 비밀협상을 추진하여 1963년부터 1989년까지 26년간 3만4000여명의 동독 정치범을 구출했다. 1인당 4만마르크에서 9만6000마르크까지, 한 사람의 몸값으로 수천만원씩을 지급했다. 대가는 반드시 현금이 아닌 동독이 원하는 현물이었다. 끈질긴 협상 끝에 동독도 지식인이나 기술자를 양성하기 위해 투자한 비용을 서독이 보상하는 것이라는 논리로 타협했다. 서독이 보여준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독일 통일의 가장 견고한 밑거름이 되었다.

이미 수십만 명의 탈북자들이 아시아 전역을 방황하고, 무고한 북한 시민들이 정치범으로 몰리는 처참한 상황은 사실로 드러났다. 미국·일본·프랑스 등의 국제단체들까지 북한인권에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섰다. 미국 북한인권위원회는 대북 식량지원 분배에 대한 검증에서부터 탈북자와 북한 개방에까지 초점을 맞추고 있다. 워싱턴 조야의 이러한 논의는 직·간접적으로 미국의 대북정책과 국제여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정부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대북 지원에 동참하는 동맹국들과 함께 대북 식량·경제 지원을 인권개선과 연계하고 검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국회와 야당도 청문회를 개최하여 탈북자·정치범 등 대북 인권 문제를 다루고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명확한 원칙하에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인권 없는 햇볕정책은 절름발이 통일정책이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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