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운동을 펼쳐온 수잰 숄티(Scholte) 미국 디펜스포럼 대표는 올 초 이정훈 연세대 언더우드국제대학(UIC) 학장으로부터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한국 대학생들은 지난 10여년 동안 북한 인권에 대해 제대로 보고 듣지 못했습니다. 국내에는 탈북자들 말고는 북한 인권에 정통한 사람도, 젊은이들에게 이 문제를 가르치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드문 현실입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만 당신이 제3자 입장에서 '사실(fact)'을 알려주세요."

숄티 대표는 1996년부터 탈북자를 도운 공로로 지난해 '서울평화상'을 받은 인권운동가다. 숄티 대표는 8일 본지와 단독 인터뷰에서 "2005년 2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는 북한 실정을 너무 모른다'고 생각했다"며 "그때 경험을 떠올리고 이번 제안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당시 숄티 대표는 서강대에서 북한인권시민연합 주최로 열린 '제6회 북한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에 참석 중이었다. 한국·호주·미국·노르웨이 등 9개국 출신 인권운동가와 학자 550여명이 모인 행사였다.

"회의를 앞두고 서강대 캠퍼스에 한총련 회원 등 일부 대학생들이 반대 시위를 벌였어요. '과도한 반북(反北)은 남북 화해에 역효과'라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렸죠. 충격적(shocking)이었어요."

숄티 대표는 "이웃이 고난을 겪는데 모른 척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직접 돕지는 못해도 안쓰러워하는 게 인지상정이죠. 굶어 죽는 북한 주민들을 돕겠다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한국 젊은이들이 반대하다니, 그만큼 그들이 북한의 실상을 모른다는 얘기죠.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세계를 알리는 것 이상으로, 한국 사람들에게 북한 실상을 알리는 게 절실하다고 느꼈어요."


▲ 연세대에서 북한의 현실을 알리는 강의에 나선 수잰 숄티 미국 디펜스포럼 대표는“굶어 죽는 북한 주민들을 돕겠다는 걸, 다른 사람도 아닌 한국 젊은이들이 반대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조선닷컴


숄티 대표는 지난 3일 입국해 5일부터 9일까지 하루 2시간씩 연세대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본지가 제작해 해외의 저명한 언론상을 휩쓴 다큐멘터리 '천국의 국경을 넘다'를 학생들에게 소개했다. 매일 탈북자 2~3명을 초청해 생생한 증언도 들려줬다.

정식으로 학점을 주는 과목이지만, 학생들에게 홍보가 안 돼 처음엔 수강생이 20명에 불과했다. 썰렁했던 강의실은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사람이 찼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청강생이 몰린 것이다.

류현재(21·연세대 1년)씨는 "아버지뻘 되는 50대 탈북자가 내 눈앞에서 입술을 부르르 떨며 '북한에서는 하루하루 연명하기도 힘들었다'고 말하는 걸 듣고 놀랐다"며 "'천국의 국경을 넘다'를 보기 전까지는 탈북 과정이 그토록 힘든 줄도 몰랐다"고 했다.

7일 오후, 정규 강의와 별도로 열린 공개 강연에는 학생 120여명이 몰렸다. 이 자리에서 숄티 대표는 "하루에도 몇백명씩 굶어 죽는 나라가 오래갈 리 없다"고 했다.

그는 지난 1일 북한 주민 11명이 고깃배를 타고 귀순한 뉴스를 알고 있었다. 북한 강제수용소가 경제사범으로 넘쳐난다는 본지 보도에 대해서는 "극심한 식량난을 감안할 때 당연한 결과"라고 했다.

"배급 체계가 무너졌어요. 북한 주민의 60% 이상이 블랙마켓(암시장)에서 쌀을 구하고 있죠. 제아무리 악명 높은 북한 강제수용소라도 암시장에서 거래하는 이들을 다 가두지는 못할 겁니다. 끔찍했던 일제 통치처럼, 북한 정권도 언젠가 끝날 겁니다."

숄티 대표는 "북핵 문제보다 '북한 인권'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핵무기는 북한 정권의 유일한 생명줄인데, 이를 자진해서 포기할 리 없다는 것이다. 숄티 대표는 "북한 인권 문제를 북한 안팎에서 공론화시켜야 한다"며 "머지않아 북한에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가능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하루 수십명씩 북한 여성들이 중국 암시장에서 인신매매됩니다. 내 아내, 내 딸, 내 어머니가 그런 처지라면 참을 수 있나요? 한국인의 침묵은 북한 주민의 죽음입니다. 북한 실상을 피부로 느낀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동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녀는 "북한에 방송을 쏘고, 전단을 날리고, 중국을 떠도는 탈북자를 구출하는 일에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숄티 대표는 탈북자 구출 프로젝트에 서울평화상 상금 20만달러(당시 환율로 2억5000만원) 대부분을 썼다.

7일 공개 강의에서 숄티 대표는 "북한 인권을 개선시키려면 한국 대학생들의 힘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 대학생들은 1980년대 한국 민주화의 주역이었어요. 21세기 북한 민주화를 위해서도 한국 대학생들의 노력과 참여가 필요합니다. 작은 노력부터 시작하세요."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뭘 하면 되느냐"고 물었다. 숄티 대표는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라(Do everything you can)"고 답했다.

숄티 대표는 12일 미국으로 출국한다. 그는 매년 4월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해온 '북한자유주간' 행사를 내년 4월 서울에서 열기로 했다. 한국 젊은이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다. /김동현 기자 hellopi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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