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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칼럼] 民意 무시한 남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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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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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호
/조선일보 통한문제연구소장 hhkim@chosun.com

남북대화의 불씨를 살려보려는 정부의 안간힘이 애처롭기 그지없다. 국민을 설득하려는 당국자의 말에는 자신감이 없고 논리는 궁색하다.

제4차 이산가족 교환방문을 불과 나흘 앞두고 북한당국은 한국의 테러경계태세를 시비걸며 일방적으로 이를 무산시켜버린 뒤, ‘안전성’을 이유로 모든 회담을 금강산에서 개최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산가족의 한과 한국민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아 버린 처사였다. 정부도 국민적 분노를 감안한 듯 단호한 대응을 보이는 듯 하더니 보름 남짓 만에 돌연 장관급회담의 금강산개최를 수용키로 방침을 급선회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당국자의 설명은 “회담의 연속성을 살리고 현안을 조속히 협의 해결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국민적 분노를 대북정책과 회담의 에너지로 활용하기보다는 어떤 굴욕을 감수하더라도 회담자체를 이어가겠다는 집념이 두드러져 보인다. 그러나 정부가 강조하는 회담의 ‘연속성’은 기존 합의사항의 성실한 실천을 통해 확보되는 것이지 고개를 숙여가면서라도 무조건 만나기만 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간단한 이치를 정부라고 모를 리 없건만 왜 이렇게까지 회담 자체에 조급증을 내고 있는지에 대해 의혹의 시선까지 일고 있는 실정이다. 기존방침의 급선회가 정부 내의 충분한 토론과 분석을 거쳐서가 아니라 청와대의 지시 하나로 이루어진 것 아닌가 하는 정황들에도 눈길이 쏠리고 있다.

미 국방부와 공공정책연구소, 의회 등에서 한반도문제를 다루어 온 척 다운스가 지난 50년간의 남북협상을 분석해 펴낸 ‘북한의 협상전략(Over the Line)’은 요즘의 남북협상 운영 주체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지적을 담고 있다.

“북한은 상대방이 낙관과 환멸과 실망 사이를 정신없이 오락가락하게끔 협상과정을 조작한다. 실망에 빠진 상대방은 다음번 협상을 시작할 때면 어쩌면 북한이 협조적인 자세로 나올지도 모른다는 부질없는 환상에 부풀어 새로운 마음으로 회담장에 나선다.”

북한과의 회담에서는 언제 어떤 회담이건 어김없이 이런 과정이 되풀이돼 왔으며 “현재의 북한정권이 존재하는 한 이 사이클은 끝없이 반복될 것”이라고 다운스는 전망한다.

북한의 협상 행태가 예측 불가능하고 비이성적이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새롭지 않다. 협상주도권을 잡기 위해 기이한 행동과 논리를 동원하고 위협적인 언사로 벼랑끝전술을 구사하는 것도 우리에게는 익숙하다.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도 이러한 전술에 변화가 없다는 사실은 이번 이산가족 상봉 무산과 회담 장소 논란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입증됐다.

북한의 이 같은 ‘일관성 없는’ 협상전술은 ‘일관성 있는’ 협상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임도 충분히 검증된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한국과의 대화를 단절시킨 두 번의 경우가 미국 부시행정부 출범과 미국의 아프간전쟁 개시와 맞물려 있다는 사실은 북한이 대남협상을 여전히 대미전략의 한 부속물로 여기고 있음을 시사한다. 북한으로서는 ‘9·11테러 이후 시대’의 미국의 새로운 세계전략이 자신에게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데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호흡을 고르기 위한 시간은 우리 정부에게도 필요하다. 지금 정부가 신경써야 할 급선무는 북한과의 회담을 위해 장소 가릴 것 없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대북정책에 대한 국내의 여론을 가다듬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야당과의 진지한 대화가 선행돼야 한다. 만약 정부가 생각하는 모습으로라도 남북장관급 회담이 열려야 한다는 것이 국민 다수의 의견이라면 야당인들 반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가 “돈과 양보로써 평화를 살 수 있다”는 인식에서, 여론과 그것을 반영한 야당의 지지가 없는 대북 회담에 매달리는 한 북한이 연출하는 환상과 환멸의 사이클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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