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부모 생이별 벌써 오십년, 헤어질 때 홍안 소년 백발 되었소.."
한국전쟁 이후 부모와 헤어져 살아온 70대 실향민 할아버지가 부모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적은 편지가 노래로 만들어져 뭇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주인공은 대전시 서구 월평동에 사는 최성근(74)씨.

60여년전 황해도 연백군 송봉면 댕구지 마을에 살았던 최씨는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부모와 이별하게 됐다.

당시 중학교 5학년에 다니던 최씨는 1950년 6월25일 인민군들이 댕구지 마을을 점령하게 되자 "이 총알탄만 잠시 피해 있으라"는 부모님의 말에 남한으로 피난길에 오르게 됐다.

최씨는 "잘 다녀오라 하고 내 등을 떠미시던 그 촉감이 아직도 생생하다"면서 "잠시동안이라 생각했던 헤어짐이 60년의 영영 한 맺힌 이별이 될 줄 그땐 꿈에도 몰랐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부모와 생이별을 한 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있을 때마다 신청서를 냈지만 북녘의 부모님은 생존 여부조차 알 수 없었고 최씨는 그때마다 애끊는 마음을 편지로 적어 노랫말로 만들었다.

편지를 노래로 만들어 부르면서 부모님을 볼 수 없는 그리움을 대신하던 최씨는 어느날 신문에서 '요즘은 애절한 노랫말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작곡가 신동일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글을 보게 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신이 3년전에 쓴 노랫말 '댕구지 아리랑'과 '슬픈 댕구지'를 보냈는데 신 교수가 음반을 내자는 제의를 해왔고 가수인 장우씨의 도움으로 아내 박인자(74)씨가 노래를 불러 CD가 만들어졌다.

최씨는 "글을 보낸 바로 다음 날 신 교수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작곡료를 안받고 노래를 만들어주셨다"면서 "고마우신 분들의 도움으로 음반 제작료도 실비 정도밖에 안 들었고 장성한 세 아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보태 노래가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CD는 시판되지는 않았고 최씨가 지인들에게만 주고 있다.

최씨는 "돈을 벌려고 음반을 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랑 같은 처지에 있는 친지들, 고향사람들, 동창들에게 CD를 나눠줬다"면서 "살아서는 고향에 가기 어렵겠지만 내 노래만이라도 고향 마을에서 후손들에 의해 불린다면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얼마나 좋아하실지.."라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부인 박인자씨는 "며느리인데 한번도 뵙지를 못해 효도를 하지 못했다"면서 "노래로라도 시아버님.시어머님께 그리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추석을 앞두고 26일부터 금강산에서 이뤄지는 이산가족 상봉행사에는 부모님이 이미 돌아가셨을 것으로 생각하고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고.
박씨는 남편에게 '댕구지 아리랑'을 불러주며 실향의 아픔을 달래줬다.


'고향부모 생이별 벌써 50년 헤어질 때 홍안소년 백발되었소
내 목숨 다 되어 저승 갈 때면 부모님 계신 곳 찾아가리라

전쟁도 이별도 다시 없는 곳 그 옛날 뛰놀던 댕구지에서처럼
부모님 다시 만나 따스한 손 맞잡고 천년만년 행복하게 모시고 싶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 너머 갈 수 없는 곳 그리운 내고향 댕구지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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