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1일 뉴욕에서 공식화한 북핵 일괄타결(grand bargain) 방안은 과거에 추진됐던 북한과의 ‘패키지 딜(package deal)’과는 몇 가지 점에서 다르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우선 과거 패키지 딜이 부분적, 단계적 협상전략이었다면 일괄 타결은 ‘원 샷(one shot) 딜’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는 말했다. 북한은 그동안 살라미(얇게 썰어 먹는 이탈리아 소시지)전술을 써왔다.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 땐 핵을 동결하는 대가로 수년간 중유와 경수로 건설을 제공받았으나 2002년 핵 동결 해제를 선언했다.

2005년 9월과 2007년 2월에도 폐쇄불능화폐기 등 단계적 접근을 골자로 하는 핵 포기에 각각 합의함으로써 역시 중유 등을 지원받았으나 2006년 10월과 지난 5월 핵실험을 했다. 국제사회의 각종 지원은 한번 북한 땅으로 들어가면 되돌릴 수 없었으나 북한이 그 대가로 보여준 단계적 핵 폐기 절차는 손쉽게 되돌릴 수 있었다.

북한은 도발협상(제재 피하기)핵 폐기 절차 일부 수용(경제적 대가 얻기)더 큰 도발의 순환을 통해 핵 능력을 갈수록 키워 왔다. 이 대통령은 이에 대해 “북핵문제는 대화와 긴장 상태를 오가며 진전과 후퇴 그리고 지연을 반복해 왔다.

우리는 이러한 과거의 패턴을 탈피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과거의 패턴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북한이 예컨대 핵연료봉과 핵시설을 아예 IAEA(국제원자력기구)에 맡기는 것처럼 ‘되돌릴 수 없는 행동’을 단번에 보여줘야 한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말했다.

둘째, 과거 6자회담에선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한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일괄 타결 방안은 북한의 2차 핵실험 후 강력한 유엔 안보리 제재가 실행되고 있는 만큼 5개국 간 단합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북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푸는 통합된 접근법(integrated approach)이 나와야 한다”면서 “제가 지난 한·미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 틀 안에서 5자 간 협의의 필요성을 제기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통합된 접근법엔 대북 제재의 공조를 다지는 것도 포함되지만, 북한이 핵 포기의 결심을 보여줄 경우 5개국이 일괄 타결의 테이블에 어떤 방안들을 올려놓을 수 있을지에 대한 청사진을 사전에 합의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다.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 밑그림인 ‘비핵·개방·3000 구상’엔 대북 지원을 위해 400억달러 규모의 국제협력자금을 조성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러나 “구체적인 (일괄 타결) 내용은 아직 관계국 간에 협의 중이므로 지금 말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했다.

셋째, 과거 6자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남북 대화 테이블엔 북핵이 의제에 오르지 않았으나 이 대통령은 향후 남북 대화가 열릴 경우 북핵을 논의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주변국들의 공조를 강조하면서 “우리 한국도 이러한 노력을 배가할 것이며 앞으로 북한과 대화하고 협력을 하게 되더라도 북핵문제의 해결이 주된 의제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8월 말 북한의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단을 만나서도 이런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이날 “북한의 핵 포기 의지를 나타내는 징후는 아직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북한의 핵 의지는 요지부동이다. 북한이 설령 일괄 타결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은밀한 핵개발을 막지 못하면 일괄 타결 역시 과거 ‘패키지 딜’의 재판(再版)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은 마지막일지도 모를 이 소중한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라는 이 대통령의 호소가 아직은 안타깝게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뉴욕=주용중 기자 midwa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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